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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꽃이 피듯 얼굴과 몸이 달아올랐다. 바싹 타들어간 입안은 단내가 났다. 숨을 쉬면 간질거리는 목구멍에서 무언 갈 토해낼 듯이 헛구역질과 기침을 같이 했다. 땀으로 범벅인 앞머리를 위로 올리고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려 바로 옆에 있는 휴대폰을 찾는 손은 느렸다. 열 때문에 늘어질 때로 늘어진 몸을 일으킬 시도조차 할 수가 없었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숨을 내쉬자 제 몸에 있는 열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느낌에 몸을 감싸는 두꺼운 이불을 더욱 끌어당겼다. 손에서 자꾸 미끄러지는 휴대폰을 잡고 오른쪽 옆에 있는 전원버튼을 누르기 까지 많은 시도를 했어야 했다.

작은 액정에 보이는 시간은 하얀색 숫자로 19시 32분을 표시했다. 폴더 폰을 열자 열려있던 동공을 찌르는 화면 밝기에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눈꺼풀 아래로 보이는 흰색 잔상에 익숙해 질 때까지 눈꺼풀을 들어 올리지 않았다. 어느 정도 익숙해 졌을 까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자 화면에 여러 통의 부재중 전화가 보였다. 주판학원이 두 번, 긴파치가 한 번, 마타코가 두 번, 나머지 5개의 부재중 전화는 전부 반사이었다. 그는 전화번호를 훑다 다시 핸드폰을 침대머리에 올려두고 몸을 웅크렸다.

그의 움직임에 따라 소릴 내는 이불을 머리까지 끌어올리고 뜨거운 공기를 들이 마쉬었다. 콜록콜록. 거친 숨소리와 기침이 밖으로 빠져나오고 절로 입가를 막은 손끝이 떨렸다. 우웅- 진동이 짧게 울렸다. 문자겠지. 우웅- 다시 한 번 진동이 울렸다. 방금과 다르게 길게 울리는 진동에 그는 몸을 틀어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똥개. 라고 적힌 걸 보고 짧게 혀를 찼다. 오른쪽에 있는 빨간색 종료버튼을 누르려다 진동이 멈추고 작은 직사각형 알림창으로 부재중이 찍히자 그것도 그만 뒀다.

바싹 말라 하얀색 각질이 올라온 입가는 작은 움직임에도 금방 찢어질 듯 했다. 그는 다시 몸을 둥글게 말아 눕고 눈을 감았다. 열이 올라 평소에 입고 다니던 빨간색 반팔 티는 땀에 젖어 진한 색을 내었고 답답하게 다리를 감싸던 바지는 벗은 지 오래였다. 끈적해. 열이 올라 땀에 젖은 몸은 물을 잔뜩 머금은 스펀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닫힌 문 너머 현관에서 전자기계음이 나더니 누군가가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집안으로 들어오자 뜨거운 공기가 올라왔다. 비닐봉투에 올라오는 열기보다 습하고 더운 공기에 그는 답답한 숨을 내쉬었다. 몇 걸음 앞에 있는 방문을 열자 제 몸보다 큰 침대에 웅크려 누워 잔기침에 몸을 들썩이는 게 보였다. 신스케. 그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낮았다. 지독한 감기였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 금세 옮을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괜히 목이 간지러워지는 느낌에 반사이는 큼. 하고 헛기침을 했다. 본래 작은 부스럼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던 그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자 다시 한 번 헛기침을 해보지만 간헐적으로 내뱉어지는 기침 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손목에 달랑 끼워온 봉투 안에 있는 내용물의 무게로 얇아진 손잡이 부분이 자국을 내었다. 반사이는 어깨를 누르고 있는 악기를 벽에 세워두고 바닥에 봉투를 내려놓았다. 그에게 다가가 허릴 숙여 땀에 젖은 앞머리를 넘기고 이마에 손을 올렸다. 손바닥을 뜨겁게 달구는 열기와 잔뜩 찡그린 미간에 엄지손가락으로 그의 미간을 살살 풀어주며 이름을 다시 한 번 불렀다.

“신스케.”

들끓는 열에 들리지도 않은 건지 입을 달싹이는 입술 밖으로 달뜬 숨을 내쉴 뿐이었다. 식은땀으로 범벅인 걸 보고 반사이는 방을 나와 욕실에서 건조한 수건을 차가운 물에 적셨다. 홀로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사람에게 일어나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양 손으로 수건의 물기를 빼내고 돌아와 이마부터 열이 많이 나는 부분을 닦아 내렸다. 차가운 것이 닿자 몸을 웅크리려는 것을 잡아 눌렀다. 쉽게 제압당하는 몸은 그의 몸 상태를 대변에 주었다.

“...반사이..?”

반쯤 열린 입에서 갈라진 목소리가 났다. 추를 단 듯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지만 제대로 보이지 않아 손을 뻗어 검은색 인영의 얼굴을 매만졌다. 둥근 이마를 지나 콧등에 걸려있는 선글라스를 툭 건들었다. 쉽게 내려가는 선글라스 뒤로 눈매를 만지는 손에 반사이는 숨을 몰아쉬며 눈을 감았다. 뜨겁다. 얼굴 전체가 열이 오른 듯 했다. 끈적지게 달라붙는 손을 뿌리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그렇소이다. 그의 목소리에 아래로 떨어지는 손을 잡아챈 반사이는 자신의 손가락 사이로 그의 손을 엮었다. 그새 살이 빠졌는지 손가락뼈가 도드라졌다.

“멋대로 들어온 것은 사과하겠소.”

분명 이 지경까지 왔으면서 남들에게 약한 모습 보이기 싫어 병원도 가지 않고 홀로 앓을 것이다. 반사이는 그의 이마에 수건을 올려두고 두툼한 무게를 가진 이불을 끌어 내렸다. 입고 있는 반팔 티가 이미 땀에 젖어 있는 것이 보이고 그 아래로 길게 뻗은 맨 다리를 보고 순간 숨을 삼켰다. 아픈 사람에게 욕정을 품는 건 옳지 못한 일이라며 되새기길 여러 번 바르작거리는 소리를 내며 이불 밖 공기에 양 다리를 모으는 것을 마지막으로 이불을 올렸다. 두툼한 이불 밑으로 다리를 겹치는 지 불쑥 튀어나온 언덕이 내려갔다.

감기 열에 옮은 것이다. 반사이는 목까지 붉게 올라온 열에 헛기침을 했다. 미지근한 열을 내는 수건을 내리고 가만히 내려 보자 다시 잠이 들었는지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는 걸 확인하고 잠시 시선을 내렸다. 눈앞을 가리는 선글라스의 유무도 없이 습관적으로 콧등을 손가락으로 만졌다. 눈앞이 가려지지 않고 선명하게 보이는 색이 제게는 너무 자극적으로 다가왔다. 본래 흰 줄 알았건만 바지 밑 속살이 더욱 밝은 톤으로 부드럽게 보였다.

“하아.. 콜록..!콜록!”

“..신스케, 눈 좀 떠보시오. 뭐라도 먹어야 하지 않겠소.”

반사이는 누워있는 그의 등 뒤로 손을 넣어 품에 안은 모양새로 끌어올렸다. 선잠을 자고 있었던 모양인지 느리게 눈꺼풀을 깜빡였다. 눈꺼풀이 뜨이고 보이는 녹안은 잠과 열에 취에 초점이 채 잡히지 않는 것을 본 반사이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벽에 등을 기댈 수 있게 베개를 허리에 받쳐주었다. 자리에 앉아 땀이 식으면서 몸이 으슬으슬 떨리자 타카스기는 이불을 어깨까지 끌어올렸다.

바닥에 둔 비닐봉투에서 큰 일회용기 그릇을 꺼내자 밑바닥부터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다행히 식진 않은 모양이다. 용기 뚜껑을 열자 걸쭉한 밥알과 고기 몇 가지가 함께 섞여있는 죽 위로 모락모락 김이 올라왔다. 반사이는 그걸 보다 자리에 앉아있는 그에게 내밀었지만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입을 꾹 닫고 거부하는 모양새에 한숨을 쉬었다.

“드시오. 어린아이같이 반찬 투정이라도 하는 것이외까.”

“...콜록..입, 맛이 없어. 저리 치워”

“...고집은..”

“..콜록!콜록...”

기침소리가 목소리를 먹었다. 한 번 터진 소리를 쉼 없이 흉부를 쪼이고 입 밖으로 날숨을 뱉고 나서야 진정이 되었다. 자고 일어나고를 반복했지만 입안으로 뭔갈 넣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개도 걸리지 않은 여름감기를 걸리게 될 줄이야. 창 밖에 들리는 매미소리와 닫힌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햇빛이 계절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물에 빠진 것 처럼 몸이 늘어져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침대와 방 언저리에 놓인 것들을 보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병원에 가지 않아도 혼자 할 수 있다. 라 생각하고 인터넷에 나오는 갖가지의 민간요법을 찾아서 실행해봤는지 흔적이 가득했다. 몸만 컸지 병원가기 싫어하는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었다.

반사이는 들고 있던 죽을 숟가락으로 떠서 그의 마른 입가에 툭 하고 건들었다. 고소한 냄새와 단향이 나자 배가 뒤틀렸다. 고개를 돌렸지만 코를 자극하는 향은 여전했다. 한 입만. 잔뜩 털을 세워 경계하는 고양이가 남이 준 음식을 먹는 것 마냥 슬쩍 보다 향을 맡고 입을 벌려 죽을 먹고 여러 번 씹어 삼켰다. 그리고 가만히 있자 반사이는 다시 한 숟가락을 떠서 입가에 툭 건들었다. 몇 번이고 반복되는 행위에도 묵묵히 먹이던 그는 들고 있던 죽의 무게가 가벼워질수록 제 앞에서 먹이를 받아먹듯 입을 오물거리는 그에게 마음이 기울었다.

처음 감정이 향하는 곳을 알게 되고 외면했다. 두 번째엔 눈길이 갔고, 세 번째는 곁에 있고 싶었다. 드라마틱한 상황으로 인해 반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어느새 그의 옆에서 함께 걷고 있을 뿐이었다. 악기를 만지는 시간 보다 그의 머리를 쓰담아 주는 시간이 더 많아졌고 음악을 듣는 시간보다 그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시간이 많아졌다. 혼자 키워가는 감정이라 치부했다.

남은 죽도 전부 비워 갈 쯤 반사이는 봉투에 함께 넣어온 약을 꺼냈다. 포장되어있는 것을 뜯고 톡 소릴 내며 알약 두 개를 손바닥에 놨다. 흰색 길쭉한 모양의 것을 미리 떠둔 물과 함께 내밀자 역시나 고개를 가로 저으며 피하는 모양새가 꼭 약 먹기 싫어하는 아이와 같았다. 잔기침에 허릴 숙이며 잔뜩 찌푸려진 미간을 풀어주며 그의 이마에 손을 올리자 별반 다르지 않은 온도에 반사이는 숨을 내쉬었다.

“약을 먹지 않는다면 그대의 요구르트는 없소이다. 이제 사주지 않겠소.”

그 말에 반응하듯 눈동자만 굴려 자신을 보자 엄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전에 가기로 했던 곳은 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소이다. 몸이 안 좋으니..”

“...콜록,,”

“이 약을 먹으면 다른 민간요법보다 빨리 낫는다는데... 그대가 싫다 하니 치우겠소.”

반사이는 으름장을 주며 뒤를 돌아 약을 쓰레기통에 버리려했다. 잠깐. 저를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손을 내밀며 약을 달라하는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손바닥에 알약 두 알과 다른 손에 물컵을 쥐어주자 눈을 질끈 감고 약과 물을 입에 넣어 삼키는 것 까지 보고 안심했다. 아이를 키우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제 됐지.”

“주무시오. 조금 나아질 것이외다.”

“잠깐.”

타카스기는 그를 불러 세웠다. 제 앞으로 오라는 손짓에 반사이는 한 번 눈썹을 위로 올렸다. 선글라스를 끼지 않은 눈매가 날카롭게 위로 올라갔다. 보답은 해야지. 제 앞으로 다가온 그를 보던 타카스기는 몸을 일으켜 와이셔츠가 벌어진 부근에 손을 끼워 넣고 당겼다. 갑자기 앞으로 당겨지는 힘에 침대에 양 손을 집고 넘어지게 된 반사이는 자신의 앞에 선명한 색을 띄는 그의 얼굴에 숨을 멈췄다. 부드럽게 눈꼬리를 아래로 휘며 다가와 입술에 입을 맞췄다.

“상이다. 이제 가봐.”

떨어지는 입술의 감촉이 부드러웠다. 반사이는 그의 뒷머리카락에 손을 넣고 끌어당기며 제 입을 다시 맞췄다. 아랫입술을 머금고 벌어지는 입 사이에 부드럽게 혀를 넣어 치열을 훑고 그 안에 있는 붉은 혀를 툭 건들었다. 끈적한 단향을 내는 입안을 헤집으며 숨을 먹었다.

“상 치고 큰데.”

“그대가 주는 거라면 내겐 다 상이오.”

서로의 열에 취했다. 라고 표현했다. 그 날은 그렇게 서로의 숨결을 머금고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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