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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먼 옛날이야기부터 시작해볼까. 남자의 손가락은 하나의 현을 튕겼다. 남자의 주변에 앉아있던 아이들은 하나둘 입에 담긴 침을 삼키며 목울대를 울렸다. 하나같이 반짝이는 눈빛을 하는 아이들의 형상이 귀여운지 낮은 소리로 웃던 그가 입을 열었다.

“아주 먼 옛날이야기외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500년 전의 이야기지.”

그의 이야기는 샤미센의 소리와 함께 시작되었다.

***

숲속은 고요했다. 나무를 하러 간 사람처럼 보이지 않은 행색의 한 남자는 주변을 둘러보다 한 물웅덩이 앞에 자리에 앉아 등에 메고 있던 길쭉한 것을 앞으로 들었다. 세 줄의 현이 빛의 흐름에 따라 날카롭게, 그리고 매끈하게 빛났다. 손가락으로 그 현을 쓸어보면 팽팽하게 조여진 현의 울림이 느릿하게 흘러나왔다.

“곧 밤이 오겠구려.”

날 벌레들이 나뭇잎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작은 움직임의 소리와 바닥을 지지는 모래와 풀이 꺾이는 소리가 그에게는 음의 흐름으로 들렸다. 그것들을 따라 하는 듯 움직이는 손가락은 현을 퉁기기도 쓸어내리기도 하며 소리를 만들어내었다. 세 개의 현이 함께 울부짖을 때 그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호박색의 눈동자가 보였다 다시 닫히길 반복했다.

‘이 산에 올라갈 때 물웅덩이는 피하시게나.’

그러고 보니, 산을 오르기 전 한마을에 있던 노부부가 이야기해준 말이 생각이 났다.

‘물을 헤치거나, 더럽히지 말게.’

‘산속에 물은 신성하니. 만약 목이 마르거든 가장 먼저 보이는 우물에서 물을 가지고 다니시게. 그 물은 우리 마을 사람들도 마시고 있으니 말이야.’

그는 허리춤에 있던 물주머니를 들었다. 팽팽하게 배가 불렀던 것은 어느새 홀쭉한 가죽만이 남아있었다. 제 앞에 있는 물웅덩이가 보였다. 홀린 걸까. 남자는 샤미센을 내려놓고 그 물 앞으로 기어갔다. 목이 마르거나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노부부의 말에 호기심이 일어났다.

“물을 헤치지 말고, 신성하다. 라.”

저를 비추는 수면은 맑았다. 잔챙이들도 꼬리를 흔들며 연신 헤엄을 치고 있었다. 다른 연못보다 맑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물비린내보단 좀 더 향긋한.

“떠돌이인가.”

말의 높낮이는 물속에서의 울림과 같았다. 남자는 살포시 미간을 찡그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제 귀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분명히 이 물속에서 말이 들렸던 것 같은데.

“그래, 밑이다.”

기다란 구렁이가 밑바닥에서 올라왔다. 사람의 모습처럼 보이는 것은 상체이나 다리가 있어야 할 곳은 비늘로 뒤덮인 커다란 뱀이 형상이었다. 두 개의 구멍이 열려있어야 할 귀는 갈퀴로 되어있었고 목덜미가 갈라지면서 속살을 내보였다. 아가미? 남자는 숨을 쉬는 법을 잊은 사람 마냥 입을 벌리고 가만히 그 생물체를 바라보았다. 이제껏 보고 들었던 요괴들과 다른 아름다움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뭘 그렇게 보는 거야. 치워.”

생물체는 말끔하게 펴있던 미간을 팍 찌푸리며 그의 볼을 내리쳤다. 물기가 가득한 꼬리의 힘은 웬만한 성인 남자의 힘보다 강했다. 순간 바닥에 넘어진 그는 제 얼굴을 매만지자 꼬리의 물갈퀴의 모양대로 붉게 올라온 부분을 매만졌다. 20여 년 살아오면서 초면에 뺨을 맞은 건 처음이었다. 날카롭게 찢어지는 소리 하며 부풀어 오르는 볼의 생소한 감각에 남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짧게 혀를 찼다.

‘무례하군.’

“네 놈이 더 무례하지.”

속내를 전부 읽어내는 듯 사람처럼 보이지 않은 생물은 가려지지 않은 오른쪽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다 젖은 곰방대를 꺼내 들었다. 물에 젖어 속이 다 비추는 옷을 입고 있는 자는 어서 썩 꺼지지 못하냐는 얼굴을 했다.

“초면에 볼때기를 때리는 요괴가 할 소린 아니외다.”

“허어?”

“그대가 이 산의 주인, 이라 할지. 잡귀라 할지 모르겠군.”

“잡귀?”

단어 선택을 잘못했다.

“잡귀라고?”

물갈퀴가 퍼뜩 떨다 아가미가 열렸다가 수증기를 내뱉으며 닫혔다. 누구도 제게 잡귀라 칭하지 않았었다. 제 모습을 보고 머리를 조아리며 산신이라 한 자들도 여럿이고 그자들의 입소문으로 자신은 어느새 이 산의 주인이 되어있었다. 그는 제 앞에 머리를 들고 양껏 미간을 찌푸리고 저를 보고 있는 자를 노려봤다.

“흥, 미물도 되지 않은 자에게 무엇을 이야기하든 이해하지 못하겠지.”

“그대가 생각하는 것보다 꽤 영리한 사람 이외만.”

꼬박꼬박 말대답하는 모양새가 쉽사리 자리를 뜨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렇다고.”

“말대답인가.”

“초면에 뺨 맞는 경험을 했으니.”

고집도 있고.

“소인은 물이 필요하오만.”

그는 홀쭉해진 물주머니를 들고 흔들어 보였다.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거죽의 흔들리는 모양새는 헐거워 보였다.

“물? 네 녀석에 줄 것 같나.”

“혼자 이 물을 독차지하려는 심보인가.”

“네 놈이 태어나 땅을 기어 다니기 훨씬 전부터 내 것이었다.”

묘한 신경전이 일었다. 땅거미가 다리를 움직이며 먹이를 찾으러 움직일 시간이 되었다. 숲의 밤은 빨랐고 둘의 사이를 어둡게 했다.

“카와카미 반사이라 하오.”

“뜬금없이.”

“숲은 밤이 일찍 찾아오니 새벽녘까지 함께 있을 자에게 이름 하나 알려주는 건 어렵지 않으니 뭐 상관없잖소.”

카와카미는 말을 흐리며 뒤에 있던 샤미센을 끌어왔다. 수면을 치고 올라오는 빛무리에 현은 물색을 띠었다. 그의 말에 요괴는 곰방대에 불을 지피고 연기를 내었다. 河上万斉. 이름에 들어있는 물은 역동적인 강이었다. 자신처럼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흐르고, 흘러 물길을 만드는 가장 첫머리.

“카와카미 반사이라 했나.”

“그렇소이다. 떠돌이 악사이자 이야기꾼이지.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해도 상관없소.”

“호, 이야기꾼이라.”

상체를 숙이자 그의 가슴팍이 드러났다. 사람의 갈비뼈라고 해야 할까. 생선의 가시처럼 보였고 숨을 쉴 때마다 흉부가 깊이 패었다. 그의 가슴팍을 보던 카와카미의 눈에 뿌연 연기가 뒤덮였다. 흡, 하고 숨을 들이쉬니 그 연기에서 나는 향은 없었다. 수증기인가. 수증기라 하기엔 물기가 없이 마른 공기였다.

“네가 내 물을 원하니 한 가지 제안을 하지.”

연기를 뚫고 보이는 그의 얼굴은 말끔했다. 목덜미의 아가미가 열리고 속으로 들어가던 수증기가 밖으로 비집고 흘러나왔다. 그의 제안에 카와카미는 숨을 들이켰다. 마치 제게 보이는 날카로운 이는 받아들이지 못할 시에 제 목울대를 물어뜯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해야 한다.

“무슨 제안이길래 이리 보는 것 이오.”

“이야기꾼이라 했으니, 이야기 하나에 물 한 모금을 주지.”

턱 없이 부족했다.

“허어?”

“받아들이지 못하겠으면 지금 여기서 나가는 것이 좋을 거다.”

피래미를 보는 오만한 얼굴에 그는 곰방대 끝을 물었다. 카와카미는 생각했다. 뭐, 그대와 대화를 할 수 있다면야. 나쁜 제안이 아니지.

“좋소. 대신.”

“대신?”

“이 번 이야기가 끝나고 그대의 이름을 밝혀줬으면 하는 바람이외다.”

또 다른 제안이 들어왔다. 이름. 이름이란 생명체가 태어나고 타인에 의해 붙여진 겉모습과 같다. 그의 갈퀴가 퍼뜩 떨자 물방울이 튀었다. 다른 이들과 달랐다. 제게 이름을 물어본 자들은 없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눈을 감았다.

“이야기를 시작하지.”

세 개의 현이 음을 내었다. 아주 먼 옛날이야기외다.

***

어린아이가 있었다. 어느 이름 없는 무가에서 태어난 아이였다. 아이의 아버지는 가문을 일으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아이에게 쏟아 부었다. 아직 걸음을 배우고 말을 할 나이었다.

“그게 아니다!”

어른의 호통은 아이를 짓눌렀다. 항상 화난 모습의 가면을 쓰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아이에게는 두려움의 상징이었다. 이마에 뿔이 돋아난 빨간색의 가면은 눈꼬리가 올라가고 황달이 낀 눈동자에 입은 항상 벌어져 있었다. 아이는 그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벌어진 입의 날카로운 이가 저를 찢어 삼킬 것 같았다. 목검을 쥔 손이 떨렸다.

“다시!”

“예, 아버지..”

아이는 저보다 큰 검을 휘둘렀다. 검 끝이 정확하게 급소를 노릴 위치여야 했었다. 고사리 같은 손은 부드럽지 않은 굳은살이 생겼고 아직 젖살이 있어야 할 팔은 근육이 꿈틀거렸다. 아침 일찍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목검을 들어야 했고, 밥을 먹은 뒤 학문을 공부했으며 저녁에는 다시 검을 들었다. 아이는 그 과정에서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자신과 같은 또래의 아이들을 만나는 것은 ‘사치’였다.

 

 

샤미센의 소리가 한 번 더 울렸다. 이번엔 조금 가벼웠다.

“그 아이가 처음 살인을 했을 때이외다.”

 

 

아이가 14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아이에게 집 앞에 있는 닭 한 마리를 죽이라고 했다. 살아있는 닭의 붉은 갓과 퍼드득거리는 날개는 생명력을 보였다. 진검을 들고 있던 아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모습에 아버지는 인자한 얼굴을 감추고 다시 붉은 도깨비 가면을 썼다.

“어서 죽여!!”

“아버지..”

“살생을 두려워하지 마라.”

아버지의 큰 손은 아이의 등을 떠밀었다. 남들보다 작은 키도 아버지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의 바람에 아이는 진검을 빼 들었다. 녹색의 닭의 눈은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았다.

“어서.”

아버지의 재촉에 아이는 검을 제 머리 위로 들었다. 눈을 감고 한 획을 그었다. 살을 베고 뼈를 깎고 바닥을 찔렀다. 뜨거운 피가 쏟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검 끝의 감각이 손바닥에 남아있었다. 그 느낌이 싫어 아이는 그대로 검을 버리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죽였다. 무언가를. 생명체를 죽였다. 방금까지 저를 보고 있던 닭의 녹색의 눈은 원망을 담고 있었다.

“잘했다. 잘했어.”

처음으로 머리를 쓰다듬는 두꺼운 손바닥은 아이의 마음을 흔들었다.

처음 닭을 죽인 감각이 채 사라지기 전에 아버지는 사람을 끌고 왔다. 같은 언어로 대화할 수 있고 닭과 다르게 살려달라고 하는 자는 어린 아이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애원했다.

“살려주십시오..제발..살려주십시오...”

“죽여라.”

“..아버지.. 저는 방금..”

“죽여.”

“..살려주세요..!!!”

애원의 소리는 한 그 자체였다.

“어서!!”

“..제발!!”

두 남자의 목소리는 아이의 귀를 울리고 심장을 때렸다. 빠르게 박동하는 심장은 정상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고 팔은 안으로 굽어 아버지의 말에 손을 들었다. 아이의 일격은 성인남자의 뼈를 가르지 못했다. 목을 부여잡고 숨을 거칠게 쉬고 있는 남자는 마지막 남은 힘으로 아이의 다리를 잡았다.

“저주..저..주..할..꺼억!! 컥”

남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버지는 아이의 검을 빼앗아 그대로 머리를 잘랐다. 제 발목을 잡고 있던 손은 머리가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힘을 주었다.

“아버,아버지..”

“마지막 말은 듣지 않도록.”

혀를 차는 아버지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지 않았으며 피투성이의 몰골에 등을 돌렸다.

“다음 이야기는 그 아이가 커서 청년이 되었을 때의 이야기외다.”

“딱히 즐거운 이야기는 아니군.”

이야기를 들을수록 남자의 미간은 깊게 패였다.

“듣겠소이까.”

샤미센의 소리는 경쾌했다. 이야기 중에 절정에 오를 때 격렬한 현의 떨림을 보여주었다.

“원한다면 계속 해주지.”

무언의 긍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카와카미는 입을 열었다.

청년이 되던 해에 그는 아버지와 의절한 상태였소이다. 다른 자들과 등을 맞대었지. 전쟁에도 참여했지만 남은 것이 없었소이다. 죽을 날을 기다리던 것이었지.

다리 아래 보이는 광경은 참혹했다. 양이지사의 끄나풀부터 전쟁에서 참패한 자들이 묶여 본보기로 목이 잘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일반인들의 얼굴에는 두려움과 공포감이 서려 있었다. 한때 나라를 위해 싸웠던 자들은 반역자라는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했다. 그들의 시체를 수습하는 것은 매끈한 검은색 날개를 가지고 있는 까마귀들이었다. 사람은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했다. 가까이 가려 하면 발목이 잘리고 옷깃을 만지면 손가락이 잘렸다.

손가락질하며 시체에 돌을 던지는 것도 공포감에 휩싸인 일반인들이었다. 노을이 지고 밤이 찾아올 때쯤에는 다리 위는 적막감뿐이었다. 어두운 곳에 눈을 가리고 있는 한 남자는 아래에 걸려 있는 시체를 보고 자리에 앉았다.

“장송곡이라도 연주를 해줘야 할 것 같군.”

등에 있던 샤미센을 내려놓은 한 낭인은 그들을 위해서 현을 퉁겼다. 끈적이게 달라붙고 있는 죽음을 향한 곡이었다. 까마귀의 울음소리도 같던 음색이 낮아지고 빠른 박자로 넘어가려던 찰나였다.

“네 녀석 뭐냐!”

그 주변을 지키고 있던 막부의 정찰병이 그를 향해 검을 겨눴다.

“이름 따위 없소이다. 그저, 소인은 저 자들을 위해 마지막 연주를 할 뿐이외다.”

“검을 지니고 있으니 반역자로 수감이다.”

“할 수 있으면 해보시오. 이미 그대의 손은 없어 졌지 않소이까.”

매끈하게 잘린 단면에 몽글 피가 맺히더니 갈 곳을 잃은 피가 쏟아졌다. 남자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제 손을 집으려 무릎을 꿇고 기었다.

“목을 잘라달라고, 머리를 숙이는 것인가. 이 연주가 끝나면.”

말이 이어지지 못했다. 둥근 머리가 붙어있지 못하고 손처럼 몸뚱이에서 떨어졌다.

“이런, 소리 하나가 사라졌지 않소이까.”

시체 뒤로 보이는 자는 꽤 화려한 옷을 어깨에 걸치고 검에 묻은 피를 한 획을 그으며 떨어트렸다.

그리 밝지 않은 달빛에 반짝이는 자는 남은 한 쪽 눈으로 제 앞에 앉아 있는 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가지.”

“곡이 끝나지 않았소이다.”

그의 말에 남자는 품에 곰방대를 꺼내 입에 물었다. 담뱃잎을 넣고 불을 붙이자 타는 내음과 함께 연기가 올라왔다. 설대가 달궈지고 끊임없이 타오르던 불도 조금 잦아들자 남자는 물부리를 물고 연기를 머금었다. 선명하게 보이는 하얀색 연기 뒤로 보이는 시체에 남자는 혀를 찼다.

“저 들을 위함인가.”

“아아, 물론.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던 자들이지 않소.”

“네 놈이 알고 있던 자인가.”

“전혀. 그저, 연주를 하고 싶었을 뿐이외다.”

“싱겁긴.”

“그대를 위한 것이지도 하지.”

말을 끝으로 연주가 멈췄다. 등에 악기를 메고 떨어진 검을 주웠다.

“타카스기 신스케. 그대와 같은 거물의 뒤를 밟고 있다 보면 말이오.”

숨을 들이쉰 뒤 말이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그대가 죽기 전에 소인이 먼저.”

“죽지 않아.”

“소인이 먼저, 그대의 명을 늘리고 가있겠소이다.”

 

***

 

 

“그 자는 남자와 어떤 관계이지?”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소이다.”

“이 번이야기에서 네 놈의 현이 뜯기고, 말소리가 떨렸다. 알고 있나?”

“매섭군.”

“속일 수 있을 줄 알았던가.”

“글쎄. 얌전히 속아준다면 좋은 일 아니외까.”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들이미는 데 속을 수가.”

“그럼.”

“카와카미 반사이.”

“이미 그대의 이름은 알고 있소이다.”

아가미가 한 번 더 열렸다. 헛 바람소리처럼 마른 숨이 나왔다.

“타카스기 신스케.”

“용케 찾아내었군.”

“그대가 죽기 전에 명을 늘리고 가겠다는 말이 너무 멋없어보여서 말이오.”

“언제부터 멋을 챙겼나.”

“그대야 말로 어울리지 않은 꼴을 하고 있잖소. 처음부터 알고 때린게지.”

“대답도 듣지 않고 간 자에게 어울리는 인사가 아니었던가.”

쉼 없이 쏟아지는 말들은 겉보기에 날이 서있었다. 몇 년만인지 수를 세어볼 새도 없이 흘러간 날은 기억에 남지도 않은 무의미한 날들이었다. 카와카미는 그를 찾기 위해 여러 마을을 옮겨 다녔다.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꿈속에 보이던 그의 뒷모습과 감정이 다리를 움직이게 했다.

“오랜만이외다.”

떨리는 목소리에 담긴 수증기는 흐렸다. 타카스기는 다 태운 곰방대를 품에 넣고 그를 보았다. 오랜만은 아니었다. 80년마다 보았었다.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찾아온 카와카미는 항상 자신의 앞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 때, 자신을 떠났던 그 해를 넘기지 못하였다. 항상 그의 죽음을 보고 잡지 못하던 자신을 탓하였다.

“오랜만이지.”

새로 태어나 항상 제게 오는 발을 멈출 수 있겠나. 타카스기는 자신의 업으로 그를 매번 품에 가뒀다. 아마 그는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많은 시간동안 셀 수 없이 찾아왔던 걸음을 말이다.

“잘 지내었소이까.”

“아아, 꽤나 좋은 삶을 지내고 있었지.”

“외롭진 않았고?”

“외로움을 느낄 새가 있던가.”

“소인이 보고 싶진 않았소?”

기대감을 실어 보냈다.

“딱히.”

기대감은 민들레 씨처럼 흩어졌다.

“그렇게 말하면서 속은 아닐거라 알고 있소.”

예전과 다르지 않은 말들이었다.

‘소인은 그대가 그리웠소.’

“소인은 그대가 그리웠소.”

‘많이 보고 싶었소이다.’

“많이 보고 싶었소이다.”

알고 있었다. 타카스기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얼굴에 손을 뻗었다. 볼을 쓰다듬었다. 체온은 뜨거웠고, 자신의 손은 너무나 차가웠다.

“이미 사람도 아닌 나를 찾아 헤매느라 고생했다.”

“그대가 어떤 모습이건 상관없소이다.”

그는 마른 침을 삼켰다. 제 볼을 만지는 손의 차가운 한기에도 따뜻하게 느껴져 눈을 감았다. 제 손으로 그의 손을 마주 잡자 손등에 느껴지는 비늘의 감촉조차 부드럽게만 느껴졌다. 몇 년을 거쳐 얼마만큼의 시간을 홀로 보냈을 지 그 생각에 고개를 떨궜다. 명치부터 꽉 막혀있던 응어리가 풀려 온 몸으로 퍼져나갈 때의 감각에 몸이 떨리고 몸에 있는 온 구멍에서 물이 쏟아 나올 것 같았다. 그 중 앞을 밝히는 눈이 가장 먼저 물을 뱉었다.

“물이 필요하다 하지 않았나. 이미 그렇게 물을 흘리고 있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지 않나.”

“이미 충분한 물을 받아 넘친 것이외다.”

말버릇은 여전하군. 타카스기는 물웅덩이에 몸을 깊게 담그고 바닥에 팔을 올려 그의 모습을 아래서 올려봤다. 몸이 마르면 갈라지기 쉬우니 사람의 연약한 피부에 비늘이 흠집을 내고 싶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말끔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 그 땐 왜 눈을 가리고 다녔는지.

“선글라스..”

“선글라스라면 여기.”

품속에서 꺼내든 선글라스는 제 자리를 찾듯 그의 눈을 가렸다.

“벗어.”

“싫소이다. 소인에게 멋이오.”

“되먹지않은 거 하나 쓴다고 멋이 살아나지 않으니까 벗어.”

네 눈도 못 보지 않나. 타카스기는 그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선글라스를 잡아 당겼다. 매끈한 콧대를 누르고 있던 금속이 사라지자 다시 맑게

보이는 그의 모습에 카와카미는 잠시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그렇게 보면..’

“뭐.”

아차. 싶었다. 속내를 전부 알아버리니.

“그리 보지 않아도.”

“뭐.”

짧은 대답이었지만 제 볼을 잡고 돌리는 탓에 정면으로 보이는 그의 얼굴에 열이 올랐다. 달빛이 가장 잘 드는 물웅덩이에 저를 보고 있는 녹색의 눈과 투명하게 비춰지는 갈퀴가 선명했다. 익살궂은 표정을 하고 놀리는 모습하며 꿈속에서 보았던 모습보다 표정이 다양했다.

“큼, 이곳에 오기 전에 소인은 건너 산에 다녀왔소이다.”

카와카미는 말의 흐름을 바꿨다.

“건너 산에는 그대의 옛 전우가 있더라지.”

“호오?”

“백야차 말이오.”

“그래?”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예전과 별 다를 바 없어보였소. 주변엔 작은 요괴들이 많았고, 뒤에는 꼬리가 여럿 달려있었소이다.”

“어디 개라도 된건가.”

“꼬리 아홉 개는 가지각색으로 움직이면서 털을 뿜어대었지.”

카와카미는 그의 손을 잡고 만지작거리면서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눈을 감은 채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그의 속눈썹이 떨렸다. 허리를 숙여 그 눈가에 입맞춤 하고 싶은 욕구가 올라왔지만 손을 만지는 것으로 참았다.

“그의 이야기를 해줄까.”

“듣고 싶군.”

 

***

 

 

백야차가 있는 숲은 풍요롭소이다. 따뜻하고, 열매가 열린 나무나 작물이 잘 자라고 있지. 덕분인지 작은 요괴들도 많았는데, 몇몇 요괴는 그대도 알고 있을 자들이외다

“어라라, 여긴 무슨 일이시래.”

“길을 잘 못 들었소.”

“여긴 딴따라 출입금지 숲인데요.”

“딴따라가 아니외다.”

말대답은.

“소인이 찾고 있는 자가 있소이다. 그대도 알고 있겠지.”

“긴쨩은 아무것도 모르는걸, 알고 있어도 안 알려줄꺼거든?”

양 팔을 겹치고 몸을 틀었다. 샘은 많은 생물이군.

“그러니까 어서 멀리 꺼지라고. 훠이훠이-”

“그래가 그리 나오면 어쩔 수 없지.”

쉽게 물어나는 모습에 그의 꼬리가 부드럽게 좌우로 움직였다. 속내를 숨기려면 꼬리를 먼저 숨겨야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카와카미는 등에 있던 샤미센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던 그 곳에 자리를 잡고 앉자 그의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지금 뭐하고 계시는거지?”

“알려 줄 때까지 여기 있을 것이외만.”

“내가 너 하나 못 쫓아 낼 것 같냐.”

“이 숲은 요괴나 사람을 가리지 않고 품어주는 것으로 알고 있소이다만.”

그의 말에 허를 찔렸다. 세 번째 꼬리가 퍼득 떨었다. 오는 이를 내치지 않고 가는 이를 잡지 않은 이 숲의 법칙을 만든 건 그 자신이었다. 만약 그를 내치게 되면 자신이 만든 법을 어기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니 매우 불편한 상황을 만들어 냈다.

“너, 돌아갈 곳은 있잖아?”

“없소.”

“거짓말 하지마.”

“없소.”

짦은 대답에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고집도 소고집이 아니었다. 건너건너 사는 고릴라만큼의 고집이었다. 이래나저래나 쉽사리 자리를 뜰 것 같아 보이지 않아보였다.

“얘기나 들어보자.”

카와카미 앞에 앉은 그는 여전히 양 팔을 겹치고 있었다. 신경질적으로 흔들리는 꼬리는 힘이 실려 있었다. 카와카미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생각했다. 이 자에게 그에 대해 물어도 제대로 대답을 해 줄지 걱정이었다.

“누굴 찾고 있는지 알고 있어. 그 물뱀자식이지?”

‘물뱀?’

그를 지칭하는 단어에 카와카미는 침을 삼키고 말을 이었다.

“꿈에, 항상 그의 뒷모습이 보여서 말이오.”

“그래서?”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을 향해 뛰어가는 뒷모습이 너무 여려서.”

무슨 이야기인가 했더니 또 사랑얘기였다. 매번 지겹지도 않나. 타카스기 녀석 좀 거두라니까. 고집은. 그의 꼬리는 신경질적으로 바닥을 쳤다. 카와카미는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 여러 번이었다. 다시 태어났을 때면 매번 이 산을 지나서 타카스기가 있는 곳으로 갔다. 맨 처음 그가 찾아왔을 때는 놀라웠다. 그리 달라지지 않은 모습을 하고 찾아와 대뜸 타카스기의 행방을 묻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의 죽음에 마른하늘이 어두워지고 한동안 비만 내려왔다.

“이제 그만 하지 그래.”

혼잣말처럼 밖으로 나온 소리는 끊임없이 터졌다.

“네 녀석 또 이렇게 사랑얘기 하다가 타카스기 앞에서 죽을 거잖냐.”

“소인은..”

“그럴 때마다 타카스기가 얼마나 슬퍼하는 지 아냐?”

“슬퍼해?”

“밤낮없이 울어대는 통에 홍수도 났어.”

그의 말에 카와카미의 머리는 생각하는 것을 멈췄다. 또. 사랑얘기. 타카스기. 죽음. 슬퍼하다.

매번. 이라는 단어가 생각이 났다. 꿈에 나타난 그의 뒷모습은 여려보여서 자신이 끌어안으려 할 때마다 손끝에서부터 사라졌다. 항상 닿지 못하는 곳에서 홀로 있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니까. 저 쪽 산에 있는 연못으로 찾아가봐. 아마 사람 발길 닿지 않아서 험할 수도 있어.”

“그럼..”

“기다리고 있을거라고.”

“소인은 그럼, 먼저 일어나 보겠소이다.”

“오냐.”

고맙다는 말 한 마디 없이 가는 건 여전히 고쳐지지 않은 모양이다. 사카타는 덥수룩한 머리를 손으로 긁적이며 아래로 뛰어 내려가는 그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긴쨩. 또 예전처럼 홍수가 나는 거냐 해?”

“안나. 이번엔.”

“매번 저렇게 보내고 난 뒤에 비만 계속 내린거 안다 해.”

“이번엔 잘 처신하겠지. 이번엔 다를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그는 저를 올려보는 두개의 파란 눈망울을 가진 작은 토끼요괴의 머리를 두툼한 손으로 쓰다듬었다. 이

번만큼은 다를거다. 그지, 타카스기.

 

 

“이런 연유로.”

“쯧, 쓸데없는 짓을 하고..”

타카스기는 그의 의도를 알아챘다. 미간을 찌푸리고 혀를 짧게 차면서 불만을 내비쳤다.

그의 방문의 끝으로 숲에 홍수가 났다며 찾아본 적이 있던 게 생각이 났다.

 

***

 

 

바닥을 때리는 빗방울은 거셌다. 해가 들지 않아 낮과 밤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의 두꺼운 구름은 하늘전체를 가렸다. 작은 동물과 요괴들은 이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면서 몸을 숨겼다. 사카타의 품에서 비를 피하고 있던 작은 요괴들의 떨림은 두려움이었다. 직접 심장가까이에 있는 떨림은 그를 움직이게 했다. 비를 맞으며 도약을 한 하늘은 짙은 먹색이었다.

“망할 물뱀녀석.”

예나 지금이나 신경 쓰이게 하는 건 도가 터있었다. 매번 이렇게 슬퍼할 거면서, 다른 요괴도 생각 해달라고. 사카타는 제 머리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멈추길 바라며 바로 옆 산으로 달려갔다. 더 짙어진 구름은 서로 몸을 부대끼며 빛을 만들어내었다. 여기저기 찌르는 빛은 나무를 태웠고 돌을 때렸다. 산 아래 마을 사람들은 물난리가 난 곳에서 양동이를 손에 하나씩 들고 물을 퍼 담아 바닥에 버렸다. 몇몇 노인은 젖은 바닥에 머리를 박고 양 손바닥을 비비며 산을 향해 호소했다. 그 모습을 본사카타는 이를 물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셈인가. 그가 도착하고 보이는 관경에 사카타는 주먹을 쥐고 성큼성큼 다가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타카스기의 볼을 내리쳤다. 품에 있던 카와카미의 죽은 시체와 별 다른 반항없이 쓰러지는 그의 모습에 화가 났다.

“그러길래.”

“..긴토키.”

“거둬버리라고!!”

“.....”

“네 녀석 때문에 몇 명이 피해를 보는 지 생각이라도 했냐? 엉?”

사카타는 그의 품에 안겨있는 카와카미의 뒷목덜미를 잡아당겼다. 힘이 빠진 성인 남자의 시체는 무거웠다.

“이 녀석 하나 거두는 게 그렇게 힘드냐? 어?”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으로 돌려보내는 게 흐름이잖나.”

“그럴 때마다 우리 쪽은 죽을 맛이라고.”

“긴토키.”

“이 녀석, 다음 생에는 내 쪽에서 죽여버릴거다.”

타카스기는 바닥을 긁었다.

“네 놈의 무른 생각 때문에 죽는 거야.”

“긴토키. 네 놈은 몰라.”

타카스기는 물 밖으로 나와 손을 뻗어 그의 손에 잡힌 카와카미의 시체를 끌어당겼다. 이미 차갑게 식은 지 며칠이었다. 자신의 몸 온도보다 떨어져 파랗게 질려있는 볼을 만지고 죽은 입술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네 놈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거다.”

“아니, 네 녀석의 중2 사상은 이미 꿰뚫었거든?”

“내 곁에 머무를 자가 아니기 때문에 매번 이렇게 떠나는 것 아닌가.”

“...바보같은 소리 하고 있네.”

사카타는 양 팔을 겹쳐 끌어당겼다. 정말 바보 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 자신을 위해 매번 이렇게 찾아오는 자를 떠나보낼 때마다 슬퍼할 것을 알고 있었다. 이미 손가락 다섯 개를 접고 하나를 폈다. 마지막이다.

“마지막이다. 다음이. 네게 돌아오는 날이. 잘 생각해.”

굳게 닫은 입이 벌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카타는 성큼 그에게 다가가 목을 감싼 옷을 쥐고 당겼다. 붉은 눈동자는 이미 성이 나있었다. 날카로운 이까지 내보이면서 으르렁거려도 그의 시선은 죽은 카와카미

의 얼굴로 향해 있었다.

“타카스기-!!!”

외침에 땅이 울렸고 나뭇잎이 떨어졌다.

“네 업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런 덜떨어진 생각이 널 가두고 있는 거다.”

“...닥쳐.”

“내 마지막 경고이자 마지막 충고야. 이제 그 때는 지났어. 이미 여러번 해가 지나고 그 날을 기억하는 자는 너랑 나 둘 뿐이야. 네 놈이 지고 있는 건 업이 아니라 죄책감일 뿐이라고. 알겠냐? 이 물뱀새끼야.”

사카타는 잡고 있던 멱살을 거칠게 놓고 입에 고여있던 침을 바닥에 뱉었다.

“네 놈이 뭘 안다고 그 딴 소리를 지껄이는거야.”

“알고 있어. 죄책감, 업보. 네 녀석보다 훨씬 예전부터 가지고 살아왔던 자의 말이니 새겨들어.”

빗줄기가 얇아졌다. 두꺼운 구름이 몸을 작게 줄였다.

“이제 그만, 너를 용서해.”

하늘이 갈라지고, 구름 위를 내리쬐던 햇빛이 바닥을 비췄다.

“이제 그만, 놔.”

***

 

 

옛 생각에 타카스기는 눈을 감았다.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삶을 끝내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자 규칙이다. 매번 자신을 찾아오는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생명이 끝나는 불씨를 다시 태울 수 도 없었다.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물줄기의 첫 머리가 끝난다는 것. 더 이상 흐르지 못하고, 그대로 고이게 되면 강이라고 할 수가 없다.

“반사이.”

“왜 그러시오.”

“너는 앞으로 흘러나가라.”

“참으로 멋없는 소릴 하는구려.”

그가 자리를 잡은 지 근 며칠이 지났다. 강은 앞으로 흘러가야 하는 법이였다. 한 곳에 오래 머물면 그것은 강이 아니라 썩은 물이지.

“떠나라. 이 곳을.”

그의 말에 현을 만지던 손가락이 멈췄다. 괴기한 소리가 났다.

“이 곳에 오래 머물 자가 아니야.”

“소인도 함께 하고 싶소만.”

“너는 인간이지만 나는 인간이지 않지.”

“그렇다면 소인도 그대와 같은 요괴로 만들면 되지 않소.”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는 통에 타카스기는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해서 제 곁에 남아있으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사람이기를 포기한다면 더 이상 하루를 살아감에 어떠한 감흥도 사라질 터였다.

“안돼.”

“왜?”

“안된다면 안돼.”

선을 긋는 표현은 단호했다.

“소인은 그대의 곁에서 오래 머물고 싶소.”

선을 지우는 말은 부드러웠다.

“그대 홀로 앞을 나아가는 뒷모습을 보고 싶지 않소이다.”

타카스기는 입을 다물었다. 절반만 걸치고 있던 상체를 아래로 끌고 내려갔다.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을 깊은 곳까지 내려가자 카와카미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소인은 그대와 마지막을 함께하고 싶을 뿐이외다. 어떤 모습이건, 어떤 삶이건.”

수면이 잠잠해졌다. 흘러넘치려던 물도 사그라 들었다. 카와카미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 곳을 떠났다. 사람을 살기에 백야차가 있던 곳보다 척박하여 마을로 내려가야만 음식을 얻을 수 있었다. 나뭇가지 하나 잘 못 밟으면 아래로 밀려 내려가는 가파른 길을 내려가 보이는 첫번째 우물에서 익숙한 노부부를 보았다.

“당신..!”

그의 모습에 노부부는 물을 뜨건 양동이를 손에서 놔버리고 입을 손으로 막았다. 그들의 반응에서 보이는 것은 두려움과 공포감이었다.

“소인은..”

“썩 꺼져버려!!”

노인은 바닥에 있던 돌멩이를 쥐어 그에게 던졌다. 보이지 않던 공격성에 팔을 들고 방어했다. 발악 같았다. 그들의 행동은 작은 짐승이 살기 위해 자신보다 큰 짐승을 무는 행동처럼 보였다

“왜 그러시는 거외까.!”

“물 신을 노하게 했구나!”

‘물 신?’

“네 녀석이 올라간 뒤로 물이 전혀 나오질 않아. 땅이 마르고 농사짓던 작물들도 말라서 죽어가고 있어!”

“그건, 오해..!”

“그리고 저 산에서 멀쩡하게 내려오는 걸 보니 확실하다.”

“오해이외다.”

“마을로 내려오지 마라. 요물.”

노인은 마지막 돌멩이를 던지고 황급히 자신의 부인을 부축하며 내려갔다. 내려가는 도중에 뒤를 따라올 것을 보는 지 지속적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요물이라니. 카와카미는 그들의 말을 이해 할 수 없었다. 그와 함께 보낸 시간은 짧았지만 이 곳의 풍경은 달라져 있었다. 처음 올라올 때의 녹색의 푸름이 사라지고 황금빛의 벼가 목이 꺾여있고, 마른 낙엽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도대체..이게..”

한 계절의 시작의 끝을 보지 못하고 두 계절이 지나갈 무렵이었다. 그는 다시 길을 올라가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처음 만났을 때와 다르지 않은 모습의 물웅덩이는 여전히 맑았다. 체감상 며칠이었을 뿐이었다.

“신스케!”

단지 며칠 만에 계절이 바뀐다는 것은 이성적으로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자는 그 뿐이라 생각이 든 카와카미는 자신의 발자국도 지울 생각도 하지 않고 올라왔다. 그는 잔잔한 물웅덩이의 수면을 손바닥으로 헤집었다. 작았던 파동이 점차 크게 울렸다.

“잠깐만 나와주시오. 신스케!”

수면은 답이 없었다. 자신의 궁금증을 풀어 줄 이는 머리카락 하나 비늘 하나 보이지 않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주린 배의 공복감에 그는 수면을 내리 치는 걸 멈췄다. 머리 위에 보이는 하늘이 처음보다 높아졌다.

“...설명을 해줬으면 좋겠는데.”

파스락 소리가 들렸다. 다른 이보다 귀가 예민한 그는 바로 반응할 수 있었다. 많은 이의 발걸음 소리가 이곳을 향하고 있었다. 거친 숨소리와

불의 일렁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포위 된 건가. 그는 자신의 등에 있는 샤미센의 머리를 빼들었다. 나무 틈으로 보이는 얇은 칼날이 이를 드러냈다. 이 장소를 지키지 않으면 그에게 피해가 갈 것이다. 카와카미는 이를 물고 좀 더 소리에 집중했다. 사방에서 들리는 횃불의 일렁거림이 커졌다. 숲을 전부 태울 기세로 크게 움직였다. 카와카미는 몸을 바닥과 가까이했다. 샤미센 현을 이용해 거미줄처럼 쳐 준 탓에 근방 10M 내외의 움직임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다.

‘동쪽으로 셋, 서쪽으로 다섯, 남쪽과 북쪽은 각 6명씩. 마을 사람들 전부인가.’

작은 마을이었다. 다 무너져 가는 집이 5채였으니 말이다. 가장 먼저 오른쪽의 현이 떨렸다. 진동이 강한 걸 보니 몇 분이내면 자신과 마주할 것 같았다. 올라오기 전에 봤던 마을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다. 다시 내려갔을 때는 마치 요물을 본 것 같은 공포심과 두려움이 가득이었다.

“신스케..”

총이 발사된 소리가 들렸다. 탄환은 바로 옆 나무에 맞았다. 나무의 1/3이 찢겨졌다. 공포심으로 먼저 들어오는 것인가. 카와카미는 생각했다. 총을 지닌 이들이 몇 명인지 어디서 암습을 할 것인지 주변을 지속적으로 정찰했다. 손바닥은 식은땀으로 젖어있었다. 손잡이가 눅눅하게 젖을 쯤 이었다. 다시 한 번 총 소리가 들렸다. 현이 끊기고 카와카미의 오른 쪽 어깨에 박힌 탄환은 계속 회전했다.

“제길. 뒤 쪽이었나.”

그는 어깨를 잡고 옆 나무로 몸을 숨겼다. 핏자국에 위치가 발칵되는 건 시간문제였으나 보이지 않은 적과 상대를 하려니 불편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우선 위치를 파악해야. 카와카미는 오른 손에 쥐고 있는 검을 왼 쪽으로 옮겼다. 어깨의 신경이 고장이 난 모양인지 제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풀숲에 몸을 숨기고 숨을 멈췄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물웅덩이의 근처는 말끔했다.

점 차 발걸음 소리가 커졌다. 미리 걸어둔 현은 사방에서 흔들렸다. 카와카미는 다시금 왼 손에 힘을 주어 검을 잡았다. 가장 먼저 보이는 자의 뒤로 두 명의 사람이 보였다. 죽여야 하는 건가. 죽기 전에 죽여야 했다. 그는 물웅덩이로 가까이 오는 자의 목을 베었다. 깔끔하게 잘린 머리가 바닥을 굴렀고 이어서 들어온 두 명의 가슴을 베고 찔렀다. 사람을 찌르고 난 뒤의 감촉은 선명했다. 다른 이들이 도착하기전에 빠르게 나무 뒤로 숨었다.

이번엔 서쪽이었다. 다섯 명 중 두 명이 장총을 가지고 있었다. 언제든지 쏠 수 있게 이미 총알을 넣어둔 채로 움직였다. 물웅덩이 근처에 도착하자 보이는 시체의 목에 그들은 숨을 멈췄다. 그저 카와카미를 몰아내려 했던 거였다. 물신이 다시 화가 나면 그 땐 이 마을은 죽는다. 다들 자신의 집에 기다리고 있을 가족을 생각했다.

“나오시게!!”

가장 선두에 있던 자가 입을 열었다. 쥐고 있던 검은 여전히 밖을 향해 있었다.

“우리는 아랫마을 사람이오! 그대 때문에 이번 농사가 망했소.”

“그만 하시게나.”

“그만하긴..! 그대가 이 웅덩이에 있었기 때문이오!! 순순히 투항하고 이 자리를 벗어나겠다고 약속을 한다면, 그냥 넘어갈테니. 나오시게!!”

남자는 소리쳤다.

‘이 곳을 벗어나고 싶지 않소.’

그가 있는 곳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나오시게!! 이미 우리 마을 사람들이 전부 올라왔소. 그만 저항하시게”

카와카미는 주변을 살폈다. 남쪽과 동쪽에 있던 자들도 소리를 듣고 찾아왔다. 돌파구는 직접 대면뿐인가. 물웅덩이는 여전히 맑았다. 바닥에 뿌려진 피는 짙은 색을 내었다. 그는 쥐고 있던 검을 내려놓고 숲에서 나왔다.

“소인은 이곳을 떠날 수 없소이다.”

오른 쪽 어깨에서부터 손가락 끝으로 흐르는 피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소인은 만나고 싶었던 자를 만났소.”

“여기는 아무도 없네.”

그의 말에 선두에 있던 자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냐!! 있소이다. 부정하지 마시오.”

카와카미는 왼 손을 들어 물웅덩이를 가리켰다. 맑은 물웅덩이에 작은 물고기들은 꼬리를 치며 움직이기 바빴다.

“그대들이 말하는 물신이.. 소인이 만나고 싶었던 자외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손가락 끝을 가리키고 있는 물웅덩이를 보았다. 사람 서 넛은 들어갈 공간이 보였다.

“알고 있지 않소이까. 소인은 요물이 아니외다. 그대들과 같은 사람이오.”

“거짓말 하지마!”

총을 든 자가 총구를 올렸다.

“요물이 아니면 근 몇 달 동안 이 산에서 어떻게 살아온거야!”

“아니면, 이 산의 신을 먹은 게 아닐까.”

한 남자의 근거 없는 말은 쉽게 주변인들에게 퍼졌다. 산신을 죽였다. 산신을 먹었다. 그렇다면 이 자로 인해 농작물이 죽고 자신들도 허기짐에 죽어갈 것이다. 말은 쉽게 전염이 되었다. 마을 사람들 눈에는 살기가 가득 했다. 카와카미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검을 쥐고 이 자들을 베지 않으면 죽을 것이다. 마을 남자 중 한 사람이 총을 장전하고 그를 향해 쐈다. 정확히 왼쪽 가슴을 향했다. 카와카미는 갑작스러운 공격에 피할 틈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다.

“죽어. 네 놈이 죽어야 한다. 네 놈이 산신을 죽였다.”

“쿨럭...!”

총알이 회전하면서 살을 뚫고 뼈를 부쉈다.

“신,스케..”

“이 자를 여기서 죽이지 않으면, 다들 굶어죽는 것은 한 순간이오!”

총을 쏜 자의 말에 다들 동요하는 모습들 보였다. 몰아내려는 생각이었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진 않았다. 바닥에서 피를 토해내는 그의 모습에 몇몇은 눈을 감거나 등을 돌렸다. 자신들의 책김이 아니라는 식이었다.

“돌아갑시다.”

차갑게 식어가고 있는 그를 똑바로 볼 수 있는 자가 어디 있을까. 그들은 죽은 마을 사람의 시체를 등에 메고 움직였다. 발걸음 소리가 점차 멀어지자 카와카미는 피가 섞인 숨을 뱉으며 몸을 옆으로 누었다. 신스케. 핏방울 하나 떨어지지 않은 맑은 물웅덩이는 조용했다. 눈 앞이 흐려지고 바닥을 긁는 손톱에 돌멩이가 치여 긁혔다. 다섯개의 줄기가 바닥에 흔적을 남겼다.

“신,스케..”

마지막 모습은 보고 싶었다. 눈앞에 보이는 물웅덩이는 성스러워 보일 지경이었다. 그의 바람이 전해졌던 것일까. 가운데에서 파장이 크게 일어나자 처음 만났던 그 날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 그의 모습에 카와

카미는 미소를 지었다. 그대를 지킬 수 있어서 좋았다. 그대를 만날 수 있어서 내 삶의 마지막 불씨가 줄어들어도 만족한다. 그를 향해 뻗는 손은 흙먼지가 가득 묻어있었다. 타카스기는 제 앞에 누워있는 그의 모습에 얼굴을 찌푸렸다. 어째서. 그 날까지 수일이나 더 남아있을 터인데.

“반사이..”

자신에게 뻗은 손을 잡아 당겨 그를 품에 안았다.

“어째서”

“..신스,케..”

토해내는 숨과 뜨끈한 피가 얼굴을 적셨다.

“그대,를 만나..서..”

“말하지말아.”

“마,지막..을.. 지킬 수..있..”

“그만해..!”

쇳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뻐금거리는 금붕어처럼 입모양과 붉은 혀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어떻게 해야. 타카스기는 말라가는 그의 입술을 머금었다. 어떻게 해야. 뜨거운 피를 마시고 그보다 붉은 혀를 건들이며 제 숨을 나누었다. 어째서.

‘그러길래, 거둬버리라고!!’

이미 삶이 끝난 자는 살아있을 적보다 차가웠다. 감은 눈은 스스로 뜨지 못하였고, 조잘거리는 입술에선 소리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반사이.. 너를 이대로 보내는 게 순리가 아니더냐.”

볼을 쓸어주자 굳어가는 피부가 닿았다.

“너를 거두는 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더냐.”

대답이 없는 그를 타카스기는 끌어안고 밑으로 내려갔다. 그를 죽인 마을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일었지만 그건 뒤의 이야기다. 물웅덩이에 붉은 꽃물이 퍼졌다. 그 꽃물은 시간이 지나 뿌리를 내리고 초록색 잎사귀를 내보이며 꽃봉오리를 맺을 것이다.

 

 

그대를 만나서 반가웠소이다.

앞으로 더 있을 놈이 뻘한 소릴.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외다. 신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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