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은 싫다. 새가 지저귀는 것도 싫다. 아침 햇살에 눈이 부신 것도 싫다. 시끄럽게 울려대는 저 알람소리도 싫다.
“신스케!”
내 이름을 부르는 저 목소리도 싫다.
아침은 정말 싫다.
“신스케 일어나시오! 이미 충분히 지각이외다!”
“…시끄러워.”
“신스케!”
“작작 불러.”
머리가 아프다. 그것도 모르고 이자식은 이름을 부르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신스케, 신스케. 대체 하루에 몇 번이나 듣는 내 이름인가. 이제 질릴 때도 됐건만 그는 이름을 부르는 것에 거리낌조차 없었다.
“네녀석 오늘 아침연습이라고 헸잖아. 왜 여기 있어?”
“취소됐소이다. 잘 되지 않았소? 어차피 그대, 소인이 올 때까지 일어날 생각 없었잖소.”
정곡이다. 확실히 얼마 전부터 밴드부의 축제 공연을 위해 반사이는 바쁘게 연습에 매진하고 있었다. 덕분에 아침 저혈압으로 일어나지 못하는 타카스기를 돕지 못해 지각을 반복하고 있었다.
타카스기는 반사이가 건네는 교복을 그러쥐고 느릿하게 침대를 빠져나왔다. 또 떨어트렸는지 바닥에 굴러다니던 자명종 시계에 살짝 금이 가 있었다. 그것을 들고 반사이는 탄식을 터트렸다.
“아아, 또 망가졌구려. 오늘로 몇 번째인지 아시오?”
“…그런 거 안세.”
“9번째이외다.”
“…”
알면서 왜 물어봐, 이자식.
그는 자주 이렇게 부모가 자식을 타이르듯 타카스기를 대했다. 한번은 신경 쓰지 말라고 부탁(협박)도 해보았지만, 오히려 불에 기름이라도 부은 듯 전보다 더 참견을 해와서 이후로는 터치하지 않게 되었다.
통신판매나 마트라고 중얼거리며 자명종을 어디서 살 건지 고민하는 반사이를 제쳐두고 셔츠에 팔을 꿰고 단추를 잠궜다. 이 상황도 언제나 그대로였다. 최근 삼일 간은 반사이가 바쁜 관계로 오랜만이라 느껴지긴 했다만.
몸단장도 하고 아침으로 토스트도 먹고 느즈막히 집을 나서자 따가운 해가 너무 격하게 반겼다. 눈을 찌푸리고 성큼성큼 걸으면 뒤에서 따라오는 반사이(개)가 한명(마리). 흡사 먹이를 주면 따라오는 유기견과 닮아 타카스기는 미간을 성대하게 찌푸렸다.
부모노릇을 하는 것을 포함해서 반사이의 한걸음 뒤에서 지켜보는 행동도 물론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언제나 자신은 뒷전으로 타카스기를 제일로 우선하며 뭔가 원할 때는 이상할 정도의 알맞은 타이밍으로 원하는 걸 제공하고 언제나 함께 있으나 뒤에서 지켜보며 보살펴주는, 흡사 주인처럼 떠받드는 일련의 행동들에 주위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고 타카스기는 공공연한 짜증을 냈다.
“뒤에서 따라오는 거 그만둬. 네가 개도 아니고 뭐하는 짓거리야?”
“뒤가 편하니 그대는 신경쓸 것 없소이다.”
“그 말투도 그만둬.”
“소인의 아이텐티티를 버릴 수는 없소.”
그만하라고 해도 듣질 않는 개새끼를 어떻게 요리할까. 타카스기는 혀를 차고 시선을 돌렸다.
말을 듣는 순종하는 개라면 모를까 반사이는 순종하는 것처럼 보여도 주인의 말을 거스를 때가 있었다.
"오늘도 좋은 아침입니다, 신스케님!"
눈을 빛내는 마타코의 뒤로 땀을 훔치는 반사이가 교실에 들어서는게 보였다.
“…예고도 없이 하는 달리기는 그만두시오. 심장에 나쁘오."
"밴드부면서 체력이 그렇게 달리면 어떡합니까! 신스케님을 보세요. 닫히는 교문을 넘는 그 유연성과 용기!
그리고 교사를 따돌리는 재빠른 달리기! 그럼에도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체력!"
"저게 땀이 아니라 물이란 것이오?"
“…닥쳐."
"것보다 교문이 닫히는 걸 봤다면 소인한테도 알려주면 어디가 덧나오? 매번 어떻게 소인을 버리는 짓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소?"
"리더는 언제나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냉정한 선택을 내리는 법! 거기에서 나온 희생은 어쩔 수 없는 거라구요!"
“…그렇다 한다."
"그러니까 말만이라도 해주시오…"
타카스기가 말도 없이 반사이를 놓고 뛴 덕분에 그는 지각으로 교문에서 생활 지도 교사에게 붙잡혔다. 타카스기를 깨우고 돕느라 여러 번 만난 교사는 또 너냐? 라면서 항례의 체력단련을 시켰다. 타카스기는 유유히 마타코의 환대를 받으며 체력단련을 하는 반사이를 지켜보는 언제나의 일상 아쉽게도 죄책감은 없었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아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파? 누가?”
마타코와 타카스키는 반사이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반사이 선배요.”
“…아파?”
“…”
“땀?”
“…물이오.”
물이라고 극구 부정하는 그를 버리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마타코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녀석이 아프다고 그랬나?”
“밴드부 부원이 반사이 선배가 아프다고 연락왔었답니다. 그래서 아침 연습 빠졌는데 괜찮냐고 묻더라구요. 지금 보니 팔팔해 보이지만.”
타카스기가 무슨 일이냐며 반사이를 쏘아봤다. 분명 오늘 연습은 취소됐다고, 그래서 타카스기를 데리러 왔다고 했던 그였다. 겨우 사람 하나 깨우자고 연습을 때려친 것도 모자라 거짓말까지?
헛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거짓말이 들통난 마당에 변명을 들을 생각은 없어서 추궁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신 반사이에게 명령했다.
“너, 앞으로 나한테 상관하지 마.”
매우 유치한 명령을.
자기만족의 과보호이기에 그냥 내버려뒀다만, 이런식으로 할 바에는 처음부터 끊어버리는 게 나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반사이는 상처받은 얼굴을 했다. 욕하고 때려도 꿈쩍도 하지 않았으면서 겨우 곁에 있지 말라는 그 한마디로 상처받은 것이다, 이 남자는.
꼭 주인에게 버림받은 개처럼 구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 타카스기는 그저 말없이 교실을 벗어났다. 뒤에서 마타코의 부름도, 교사의 외침도 무시하고 복도를 걸었다. 결국 반사이는 따라오지 않았고 다음 날부터 반사이가 아침에 찾아오는 일도 없어졌다.
* * *
오랫동안 공들여 준비한 축제는 성황리에 개막됐다. 해마다 있는 축제에는 마을 사람들은 물론이고 이웃마을 사람들까지 찾아와 인산인해를 이뤘다. 모두가 즐거워하는 이 시간. 그동안 힘들게 준비한 만큼 보람찬 것은 분명했으나 아쉽게도 마타코는 활짝 웃을 수 없었다. 오히려 울고 싶었다.
아까부터 뒤통수가 따가워요!
살기로 건드려진 생존본능으로 도망치고자 하는 몸을 필사적으로 부여잡았다. 약 한 달간. 타카스키의 기분은 최저를 찍었다. 이럴 때 필요한 반사이는 정말 매우 안타깝게도 마타코가 사랑해 마지않는 타카스기의 기분 저하의 원인이었고 그렇다면 그를 제물로 바치자 계획을 세웠으나 짜증나게도 그는 축제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할 밴드부 부원으로써 현재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 중. 결국 이도저도 못하는 사이에 타카스기의 기분 나쁨은 바닥을 뚫고 지구를 뚫을 기세가 되었고 이제는 살기까지 흩뿌리고 있었다. 덕분에 호객 행위를 위해 있는 교실 복도 주의 3m에는 보이지 않는 바리게이트가 쳐졌다.
“쳇.”
살려줘!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도움을 요청하며 교실을 들여다보면 타카스기의
살기가 벽까지 뚫고 교실 안에 남은 이들에게까지 전달돼 누구도 말리지 못하고 떨고만 있었다. 그러나 어디든 용자는 있는 법. 설사 다리를 호들갑스럽게 떨고 있더라도 용자는 용자. 너의 용기를 칭찬한다!
“저… 타카스기 군? 그… 여기 있으면, 심심, 하지…? 밖에라도 돌아다니면 어떨까…”
“하?”
“그, 그러니까 여기 있으면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답답해 보이는 것 같아서!!”
대단하다, 할 수 있다, 파이팅 반장! 너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을게, 반장!
“…그렇군. 잠시 다녀오마.”
“감사합니다!!”
타카스기는 기뻐하는 이들을 뒤로 하고 홍보 팻말을 어깨에 짊어진 채 복도를 거닐었다. 흡사 어디를 주름잡는 보스의 모습과 함께 아직 희석되지 않은 살기로 그가 가는 길마다 모세의 기적처럼 길이 만들어졌다. 타카스기의 뒷모습이 엊그제 티비에서 본 총독의 모습과 겹쳐 보여 마타코는 눈물을 글썽였다.
당신이라면 할 수 있습니다, 총독…! 배신자에게는 철퇴를!
그 배신자가 반사이를 뜻하는 것과 당연하게 반사이를 바치는 마타코의 속내는 아무도 몰랐다.
타카스기와 시선을 마주치지 못한 사람들은 대신 나름 예쁘게 꾸며진 팻말의 글씨를 읽었다.
‘메이드카페에 어서 오세요! 귀여운 메이드와 멋진 집사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면 뭘 하려고 그러나요. 팻말을 들고 있는 집사 라고 추정 님은 매우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아서 누구 하나 죽일 것만 같은데 거기 가면 무슨 짓을 당하나요.
지금 이 순간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로 이어지는 기적을 일으켰다. 그 기적을 일으킨 당사자는 아픈 어깨를 위해 팻말을 내렸고 동시에 근처 사람들이 움찔 몸을 굳힌 것을 알지 못한 그는 옥상으로 향했다. 이미 그에게 홍보는 안중에도 없었다.
타카스기는 반사이의 상처받은 얼굴을 떠올렸다. 일방적으로 반사이를 거절한지 한 달. 그동안 타카스키가 반사이를 찾은 적도 없었다. 원래 반사이를 자신이 찾은 적은 없고 항상 반사이가 먼저 다가왔기에 아주 철저하게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것이 용이했다. 게다가 처음 며칠을 제외하고 밴드부와 축제 준비로 바쁜 반사이의 모습을 보기 힘든 일이 맞물려 같은 반인데도 무척 멀어진 것 같은 어색함에 마타코만 어쩔 줄 몰라했다.
그녀에게 약간의 미안함이 있었으나 타카스기는 이번 기회에 반사이의 그 희생정신을 고치고자 했다. 타카스기의 권유로 밴드부를 시작하긴 했으나 의외로 즐겁게 부원들과 어울리고 과보호도 어느 정도 줄어들었다고 생각한 것은 정말 착각으로 중요한 동아리의 아침 연습에 거짓말까지 쳐서 빠질 정도로 반사이는 타카스기에게 집착했다.
집착. 타카스기는 그렇게 생각했다. 부모노릇이고 개 같고 뭐고 간에 그것은 이미 집착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의 손을 거쳐야 직성이 풀리고 그렇지 않으면 심하게 훼손된 것처럼 구는, 광기어린 집착. 처음 느낀 오한은 타카스기를 집어삼키려 꿈틀댔고 일찍이 그것을 깨달은 그는 이번 일을 계기로 조금은 진정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옥상의 문 앞에서 만난 반사이의 그 열이 가득한 시선에 제 바람이 뭉개졌다는 것을 알아 버렸고 이제 그를 막을 수 없다는 것도 알아 버리고야 말았다. 그리고…
“신스케. 곧 공연이 시작되오. 한번 보러 오지 않겠소?”
“…내가?”
“그대가.”
이건 너무 뻔뻔한 거 아닌가. 상처받은 주제에 아직도 주인에게 꼬리치는 모습이 정말 개 같지 않은가. 이 광견새끼가.
“한번, 보러 오면 좋겠소.”
어두운 선글라스 너머에서도 확연히 느껴지는 열은 타카스기를 훓었다. 타카스기는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반사이가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여전히 들고 있던 팻말로 옆을 지나갈 때 후려칠까도 했지만, 평소라면 괜찮을지 몰라도 축제 동안 소란을 피우면 뒷감당이 쉽지는 않아 그만뒀다.
반사이의 소원은 가볍게 씹고 옥상에서 죽치고 있을 생각이었으나 옥상에 들이닥친 마타코로 무산됐다. 어딘가 신나보이는 마타코에게 억지로 이끌려 사람이 우글거리는 야외 공연장에 들어서는 것이 무엇보다 싫었지만, 약간의 보상도 필요하다고 생각해 순순히 그녀를 따랐다.
“이번 공연은…”
“신스케님. 시작하는 것 같아요! 반사이 선배의 공연!”
“그딴 걸 보러 온 건가?”
“같이 와달라고 신신당부를 해서 그만… 싫으신가요?”
“…아니.”
철저한 새끼. 그도 마타코가 가운데에 껴서 이도저도 못하고 불안해하
는 것쯤은 아무리 바빠도 알고 있을 터였다. 싸운 게 분명한 두 사람의 관계 회복을 위한다고 하면 기뻐하며 타카스기를 데려올 것이 뻔했다. 그냥 공연 끝나면 한 대 쳐야지. 여전히 갖고 있는 팻말의 손잡이를 꾹 잡자 콰직거리는 좋지 않은 소리가 났으나 무대 위에 올라선 밴드부를 향한 함성으로 그것은 묻혔다.
밴드부의 공연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학교 행사를 밥 먹듯이 빠지거나 관심이 없거나 둘 중 하나라 반사이에게 밴드부를 권유한 주제에 정작 그가 악기를 만지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물론 짐짝만한 검은색 가방은 항상 보았지만.
사람들의 환성 속에서 시작된 공연은 타카스기의 기준으로 뜻밖에 좋았다고 평했다. 음, 하지만 솔직히 좋았다고 하면 귀랑 꼬리까지 만들지도 모르니 말하는 것은 관두자. 옆의 마타코는 신나게 반사이를 외치며 붕붕 손을 흔들고 있었다. 즐거워하는 마타코에게서 보컬 바로 옆에 기타를 치고 있는 반사이에게 시선을 돌리면 꽤 강렬한 시선과 마주해야만 했다.
“…!”
헛숨을 들이켰다. 저 개자식은 공연에나 집중할 것이지 엉뚱한 곳에 집착하면서도 기타는 정말 열심히 치고 있었다. 주의 사람들이 뭐라고 하지 않는 걸 보면 잘 치고 있는 것 같은데 저러고도 치는 게 참 용했다.
타카스기는 반사이의 강렬한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피할 이유도 없을뿐더러 피해봤자 손해보는 건 타카스기 자신이다.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그 짜릿한 감각을 몇 번이나 겪어봤을까. 반사이의 그 시선은 처음이 아니었고 그것을 올곧이 받아들인 것은 자신이 선택한 일이었다.
그래, 사실을 말하자면 타카스기는 이미 옛적에 반사이를 받아들였다. 죽이자고 하면 충분히 죽일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반사이가 하고 싶어하는 대로 두고 기어올라도 가만히 내버려뒀다. 타카스기는 반사이가 하는 그것들이 못내 귀여웠던 것이다. 물론 귀찮게 하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어떻게든 자신을 옭아매겠다고 아등바등거리는 것은 마음에 들었다. 평범한 개도 아닌 광견새끼를 키우는 맛을 누가 알까.
선글라스를 쓰고 있으니 알 길이 없었지만, 시선을 마주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으므로, 사실 어찌돼든 상관은 없었지만. 하여튼 한글자 한글자 그가 제대로 볼 수 있도록 입을 움직였다.
아. 침. 에. 보. 자.
순간 휘청거리는 것이 보였으나 개의치 않고 타카스기는 자리를 이탈했다. 마타코는 공연에 푹 빠져 있느라 그가 없어지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내일부터 또다시 반복될 일상은 질릴 법도 했으나 생각만으로 매우 즐거웠다. 방에 함정이라도 설치할까 하는 누가 들으면 다소 황당해할 생각을 태연히 하면서 그는 사람들을 제치고 교실로 돌아갔다. 뒤에서 특정 악기로 인한 불협화음이 들린 것도 같지만, 무시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