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irst posse
이거, 이거. 귀한 손님이 이런 누추한 곳에는 어인 일이신지. 인사가 늦은 모양이라 몹시 죄송할 따름입니다. 고개를 숙이고 숙이고 숙여도 혹여나 모자라지 않을까 심히 걱정이 됩니다만. 그럼에도 염치 불구하고 인사를 올리지요. 처음 뵙겠습니다. 소생은 아리스가와 다이스라고 하는 미천한 갬블러입니다. 네? 이름도 직책도 알고 있다는 것과는 다르다니. 이거야, 무슨 말씀이신지. 소생은 하늘과 땅에 맹세하고 가슴에 손을 얹으며 천하에 선언하건대 소생은 그 어느 각도로 보나 갬블러인 아리스가와 다이스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유메노? 겐타로? 그런 인물은 제 데이터베이스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름이군요. 참고로 덧붙이자면 전혀 쓸데없고 영양가 없으며 창조적이라곤 조금도 없는 갬블에 제 모든 것을 걸고 몸을 불태우는 쾌락에 몸을 맡기는 것이 소생이 아주 좋아하는 취미 중 하나죠. 그래요, 소생은 갬블을 사랑합니다.
뭐, 거짓말이지만요.
예, 거짓말입니다. 갬블 따위 비생산적인 놀음에 지나지 않죠. 여흥거리로는 잠깐 즐거울지도 모르지만. 뭐, 본인은 그런 것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흠, 이 장소에 다이스가 있었다면, 아까 소생의 발언을 들었다면 꽤나 역정을 낼지도 모르겠군요. 말 그대로 갬블에 목숨도 거는 사람이 아리스가와 다이스라고 하는 사람이니까요. 그리고 소생이 바로 유메노 겐타로라고 하는 작가이자 거짓말쟁이입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시는 시부야 디비젼, 플링 포세의 멤버이기도 하죠. 아까 소생이 이름을 잠시 빌렸던 아리스가와 다이스라는 사람은 갬블러이자, 그 역시 플링 포세의 멤버이기도 하죠. 동료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전 더티독의 멤버이자 현 플링 포세의 리더. 즉 저희 팀의 리더인 아메무라 라무다와 아무래도 랩 배틀을 한 모양이더군요. 그것이 계기가 되어 팀에 들어왔고. 라무다가 분명 이렇게 말했었나요?
‘내가 생각하는 시부야에서 가장 재미있는 사람들’
뭐, 기억에 약간 틈이 있을 수도 있으니 사소한 차이는 넘어가 주세요. 분명 라무다는 다이스가 갬블에 목숨을 걸었다.라는 한심한 소문을 듣고 찾아간 모양입니다. 글쎄, 재밌는 건 둘째 치고 그 소문이 사실이라는 것이 소생에게 있어서 더욱 어이없지만요. 자, 여기서 잠깐 예전 이야기를 해볼까요. 경청해주세요. 때는 거슬러 올라가 천년 전-이라니, 거짓말이에요. 소생이 회상할 지점은 기껏해야 몇 달 전 이야기랍니다.
***
그날의 시부야의 날씨는 맑음이었습니다. 무척이나 기쁘게도 하늘은 높고 구름은 한 점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죠. 햇살은 결코 뜨겁지 않으며, 상냥하게 미소 지으며 시부야의 거리를 어루만지듯 내리쬐고 있었답니다. 바람은 선선하고 살랑거리며 부드럽게 소생의 머리끝을 조금 흔들어 놓았죠. 소생은 1년에 한번 찾아들까 말까 한 완벽한 날씨를 만끽할 새도 없이 머리를 뒤흔들어 놓을 듯한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찌르는 어느 시부야의 대병원에 들어섰습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소생은 소생의 친구의 병문안을 위해 그곳을 찾았습니다. 병실은 7층. 습기가 벽에 달라붙은 듯한 눅눅한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7층 버튼을 누르고 잠시 속이 뒤집히는 듯한 이물감을 느끼고 나서야 7층에 도착했습니다. 7층은 장기입원 환자가 있는 병동. 사람이 북적거리던 로비와는 달리 서글픔을 조용히 끌어안은듯한 정적이 흘렀습니다. 간혹 병실의 티비 소리와 간호사들이 업무를 보는 말소리가 들릴 뿐. 미칠 듯이 적막하다. 이곳은 올 때마다 그랬습니다. 천천히 죽음을 맞아들이기 위한 준비를 하는 체하는 것 같아. 아랫입술이 아파와서 나도 모르게 깨물었던 모양이라, 복도에서 자주 마주치는 간호사분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싱긋, 웃어 보이고는 소생의 친구가 있는 병실의 문을 열었습니다. 팔에 링거주사가 꽂혀 있는 한 남자가 누워있는 커다랗고 깨끗한 흰 침대만이 덩그러니 놓인 1인실. 창가에는 붉은 꽃이 한 송이 피어있는 화분 하나. 소생은 의자 하나를 끌어다 친구의 옆에 앉았습니다. 그 친구는 막 잠든 것 같았습니다. 가만히 색색 소리를 내며 잠에 빠져있었죠. 때가 좋지 않았던 걸까요. 기껏 소생이 새로 쓴 책을 한 권 가져왔는데 말이죠.
“오늘도, 당신에게 들려줄 거짓말을 가지고 왔는데 말이죠.”
조용히 그렇게 속삭이자, 손끝이 살짝 떨렸습니다. 자고 있어도 분명 듣고 있을 거라 믿고, 목을 가다듬었습니다.
자, 내가 지금부터 들려주는 이야기는 모두 거짓말이야.
***
“… 그렇게, 두 사람은 영원의 맹세를 맺었습니다.”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소생의 친구는 곤히 잠든 채로 이야기를 들어주었습니다. 거짓말이지만,이라는 말로 이야기의 막을 내리듯 끝맺은 후, 소생의 책을 침대에 올려놓았습니다. 귓가에는 커튼이 닫히고 박수소리와 함성이 극장을 뒤흔들어 놓는 낭독회라도 되는 듯. 소리 없는 박수가 귓전을 때렸습니다. 소생은 단 하나 뿐인 청중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 병실을 뒤로했습니다.
소생은 병원을 뒤로하고 시부야의 단골 카페로 향했습니다. 예, 용건을 말하자면 차기작의 구상을 위해서랄까요. 아아, 궁금하신 분들도 있겠네요. 소생의 이번 신작은 거짓말쟁이 공주와 그를 따르는 쾌락주의자 무사의 이야기랍니다. 언젠가는 그 이야기도 들려드릴 수 있다면. 그날을 기약하죠. 소생은 카페 창가에 앉아 밀크티를 마시며 수첩을 펼쳐 되는대로 끄적거렸습니다. 낙서가 아니에요. 소생 나름의 머리를 비우는 방법이랍니다. 뭐, 그렇게 10분 정도 지났을까요. 밖이 조금 소란스러웠습니다. 시부야의 거리 한복판에서, 소란이란 그리 드문 일도 아니었습니다만, 그 소란의 중심에 선 인물이 소생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탁한 푸른빛 머리카락, 귀 한쪽에 건 특이한 모양의 귀걸이, 카키색의 코트, 찢어진 베이지색 바지. 전체적으로 마른 체형, 날카로운 고양이 상의 얼굴. 그리고… 손에 들린 트럼프 카드. 그 남자는 뒤에서 쫓아오는 험악한 인상의 무리에게 쫓기고 있더군요. 필사적으로 도망치던 그는, 어째서인지 소생이 있는 카페 안으로 뛰어들어왔습니다.
***
그는 점원이 인사할새도 없이 휙 하고 카페 화장실로 몸을 던지듯 뛰어들어갔습니다. 밖에 있던 험악한 인상의 덩치들은 그를 보지 못한 듯, 애먼곳만 찾아다니면서 씩씩 거렸죠. 어딘가의 폭력단의 조직원 같은 차림새의 남성들은, 근육질의 거구의 몸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카페 주변을 이 잡듯 뒤지더니, 20분쯤 후에야 겨우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정작 이 안으로는 들어오지 않다니, 멍청한 건지, 바보인 건지.
“헉… 헉… 젠장… 더럽게 끈질긴 자식들 같으니…”
예의 쫓기던 남자가 숨을 헐떡이며 화장실에서 나왔습니다. 저런 사람들에게 쫓기다니, 빚이라도 진 걸까요? 아니면… 손에 들린 트럼프 카드와 주머니에서 삐져나온 구겨진 지폐 몇 장으로 보아서는, 도박장에서 사기라도 친 걸까요. 그렇다면 그쪽도 썩 당당한 사람은 아니겠네요. 애초에 수상한 남자에게 쫓기는 사람이 수상하지 않을 리가. 소생의 흥미를 끄는 건 이 정도려나요. 어쩐지 엮이면 피곤할 것 같은 느낌이므로, 더 이상 상관하는 건 그만하도록 할까요. 소생은 수첩을 덮고 일어났습니다. 음료수 컵을 집어 들고 카페의 문을 밀치는 순간, 오른쪽 몸에 묵직한 통증과 함께 몸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습니다. 정신이 순간 어지러워져서, 털썩 자리에 쓰러진 소생의 옷 위로 밀크티의 갈색 액체가 퍼지고 있는 것을 본건 겨우 10초 후였습니다.
“아… 미, 미안! 괜찮아? 다치지 않았어?”
“잠깐… 눈을 어디에 두고 다니는 겁니까 당신은…”
징하고 울리는 머리를 흔들어 보이고, 소생의 흰옷 위에는 뚜껑이 열린 플라스틱 컵과 쏟아져 나온 밀크티였던 갈색 내용물 덕분에 흰옷이 흰색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소생을 치고 지나간 사람은 아까의 쫓기던 남성. 아마 반대쪽 문을 열고나가려다 소생을 친 것이겠죠. 정정. 다시는 이 사람과 엮이고 싶지 않습니다. 그는 걱정스러우면서도 곤란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서두르다가 그만… 정말 미안! 괜찮아?”
“괜찮을 리가 없잖아요. 소생의 옷이 이렇게 돼버렸는.”
“아니, 손 말이야. 화상 입지 않았어?”
그는 소생의 손을 잡더니 들어 보였습니다. 그의 시선은 천천히 화상 흔적이 없나 살펴보듯, 꼼꼼히 손을 보고 있었습니다. 난생처음 보는 사람에게 손을 붙잡혀 걱정을 당하니 (그쪽 잘못이긴 하지만) 황당한 마음도 있고, 시선이 너무 달라붙는 것 같아 급히 손을 뺐습니다.
“소, 손은 됐으니까. 옷… 어떡할 셈이죠?”
“그, 그러네. 변상… 해야겠지?”
“겠지. 가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하는 겁니다.”
“그, 일단 이거 받아. 지금 전 재산이야…”
그렇게 말하며 그는 주머니에 있던 꾸깃꾸깃 접힌 지폐 뭉치를 내 손에 쥐여주었습니다. 눈대중으로 세어보니 세탁비를 하고 조금 남을 수준이었습니다. 이게 전 재산?
“이걸로 될까?”
“…자, 이 정도면 되니까 남은 건 가져가세요.”
세탁비를 빼고 남은 돈을 돌려주자 그는 기쁜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지, 진짜 고마워!! 다행히 오늘 저녁은 먹을 수 있겠어…”
“전 재산이라는 말이 사실이군요…”
옷에 붙은 먼지를 털고, 다행히 젖지 않은 수첩을 품에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는 몇 장 되지 않는 지폐를 세며 입이 찢어질 듯 웃으며 좋아하더군요. 글쎄, 소생이 그다음에 왜 이런 말을 꺼낸 건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네요.
“당신, 이름은?”
“나? 아리스가와 다이스라고 하지.”
“직업은?”
“갬블러.”
예상대로. 그런 생각이 머리에 스쳐 지나갈 새도 없이, 소생의 입에서 필터를 거치지 않은 말이 마구 튀어나왔습니다.
“소생은 유메노 겐타로라고 합니다.”
“아, 그래… 그런데… 갑자기 통성명은 왜?”
“이거, 받으세요.”
소생은 세탁비를 포함해 지폐 몇 장을 더 얹어 돌려주었습니다. 다이스는 눈이 튀어나올 듯 놀라서, 말없이 입만 벙긋벙긋거렸습니다.
“단순한 동정이에요. 세탁비야 얼마 안 나오니까.”
“하, 그런 거였냐. 자존심 상하지만 일단 받아주지 뭐.”
소생의 말에 입을 삐죽 내밀며 부루퉁하게 말하던 그는, 마지막 말을 하며 씨익 웃어 보였습니다. 그때였을까요. 그가 위험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 생각이 든 건.
이것이, 소생과 다이스의 첫 만남이랍니다.
***
“…다 좋은데 말이야."
“네?”
“대체 누구한테 설명하는 거야?!”
“어머, 그야 다이스죠.”
“아니, 분명 나 말고 누구한테 말하는 것 같잖아?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자기소개를 하고, 그것도 나라고 거짓말로! 게다가 내 첫인상이 수상한 사람이었다니… 그것도 거짓말이지?!”
“유감이지만, 거짓말이 아니에요. 그 상황이라면 다이스를 수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태반 아닌가요?”
“윽…”
“뭐, 그것도 거짓말이지만요.”
“하아, 됐어. 포기하련다. 네 본심 같은 거 나는 평생 못 듣겠지.”
“…사실. 이미 들었지만요.”
“응?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에요. 다들, 이 이야기는 다이스에게 비밀이랍니다?”
“그러니까, 대체 누구에게 얘기하는 건데?”
“음… 비밀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