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좋아해서 미안해.”
그 말만 남긴 채 다이스가 사라졌다.
“다이스한테 아직 연락 없어?”
쌀쌀한 날씨에도 차가운 파르페를 고집하던 라무다가 작은 숟가락에 위태롭게 퍼 올린 소프트를 서둘러 입안으로 넣는다. 그러곤 소프트의 차가움과 달콤함에 몸을 잘게 떨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네. 아직 연락 없네요. 라무다한테도 별다른 연락은 없었나요?”
“뭐~ 다이스는 나랑 개인적인 연락을 주고받던 사이는 아니었으니까~? 연락이 와도 재워주라 라무다! 돈 빌려줘라 라무다! 이런 게 전부였는걸?”
“그런가요?”
겐타로는 시도 때도 없이 자신의 하루를 재잘대며 전해오던 다이스를 생각하며 어느새 식어버린 캐모마일을 한 모금 들이킨다. 부드럽게 퍼지는 캐모마일의 향이 잠겨있던 목을 달래주듯 감싸 내려간다.
“좋아한다고 했다며.”
“네. 갑자기 들었네요. 친구로서... 얘기하는 걸지도 모르지만요. 장난을 친 걸 수도 있고요.”
“아하하~! 겐타로! 다이스가 아무리 단순하고 바보 같은 면이 있다지만~? 그런 걸 장난스럽게 이야기할 사람이 아니란 건 알잖아~?”
목을 타고 내려가던 캐모마일이 닿는 곳마다 다 생생히 느껴졌었는데 목 끝에서 감각이 사라졌다. 들이킨 차가 어디로 가버렸는지, 제 위장에 제대로 들어갔는지 겐타로는 알 길이 없었다.
“식으면 돌아오겠지.”
“너무 걱정하지 마 겐타로!”
라무다가 별일이 아니라는 듯 달래는 듯한 어투로 웃어 보이며 파르페를 연거푸 입에 넣는다. 차가웠던 파르페가 라무다의 따뜻한 입안에 닿자마자 스르르 녹는다. 겐타로는 진즉에 식어버린 찻잔을 괜히 엄지로 쓰다듬는다. 처음엔 뿜어져 나오는 온기로 손닿는 부분이 녹는 것 같았는데, 다 식어버린 차를 담은 잔은 닿아 있는지도 모르게 아무런 자극도 없었다.
“좋아해서 미안해.”
흰 천장을 비추던 찻잔 속 물가에 파란 뒤통수가 떠오른다. 그날 다이스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더라. 겐타로는 눈을 느리게 깜박이며 그의 모습을 떠올리려고 한다. 어떤 표정으로, 어떤 목소리로 그 말을 내게 전했더라. 몇 번을 기억을 더듬어도 머릿속에 그려지는 건 어째선지 다이스의 뒷모습뿐이었다. 잃어버린 일회용 카메라의 필름처럼 어렴풋한 프레임 속 이미지만이 남아있는 전부였다. 물가에 떠오른 파랑이 일렁이며 부서지려 한다. 겐타로는 코를 박고 파랑을 모조리 삼켰다. 짠 바다의 맛이 날 것 같았는데, 은은한 꽃 향만 입안에서 맴돌다 목을 타고 이내 사라졌다.
좋아하는 게 뭔데.
혀 뒤로 쓴맛이 넘어온다. 꽃 향에 절어져 있던 부드러운 혀가 쓴맛을 넘기려 애써 침을 모아 삼켰다.
*
“원하는 건 뭐든지 골라보렴.”
“겐타로는 어떤 게 좋으니?”
“네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어떤 스타일이야?”
“작가님은 어떤 것들을 좋아하시나요?”
겐타로는 좋아함에 인색한 남자였다. 좋아함에 어색한 남자였다. 며칠째 풀리지 않는 원고를 보며 만년필을 몇 번 굴리던 겐타로가 펜을 내려놓곤 그대로 뒤로 기대 눕는다. 바닥에 갈색 머리칼들이 마구잡이로 구겨져 흩어진다. 흩어진 머리칼을 따라 마인드맵처럼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지고 어느새 방이 그의 잡념으로 한가득이었다.
“좋아한다... 라.”
그가 써내려온 이야기들은 대부분 유쾌하고 즐거운 이야기들 투성이었으나, 그중 연애를 다룬 내용은 없었다. 부부가 나오기도 약혼자 설정이 나오기도 했으나 사랑이라던가, 연애 감정으로서의 호감을 다뤘던 적은 없었다. 그가 사랑이 낯설었으니까.
겐타로는 눈을 감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나열해본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돈부리는 맛도 있고 거하게 차리지 않은 느낌이라 혼자 먹기도 좋지, 음료는 녹차나 홍차 종류가 좋고, 원고의 마지막 줄을 써 내린 후에 기지개를 켜는 순간도 좋지. 지나가다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이 내 책을 읽고 있는 것도 드물지만 볼 때마다 매번 기쁘고. 집 앞에서 자주 만나는 삼색 고양이와 누런 강아지도 귀여워서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사람. 키워주신 할머니, 할아버지. 또 늘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 그리고 함께하면 소란스러워지지만 플링 포세도. 라무다는 눈치가 빠르고 밝아서 내가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분위기를 즐겁게 만들어주니 좋고, 그리고 다이스도...
제 주변을 더듬듯 생각을 뻗어나가던 겐타로가 다이스를 떠올리려다 멈췄다. 정확히는 생각이 멈춰졌다. 다이스를 왜 좋아하더라? 다이스를 어떻게 좋아하더라? 애초에 다이스를 좋아하던가? 다이스를...
“다이스...”
입 밖으로 그의 이름을 내뱉자 방을 가득 채우던 생각들이 검은 물감이 쏟아진 듯 뭉개져 지워진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지금 어디 있어요?”
그것 말고는.
*
하늘이 구름으로 덮여 분명 공기 중은 밝은데도 하늘을 보는 게 눈부시지 않은 날이었다. 빈 틈 없이 들어차있는 구름들에 하늘은 처음부터 흰색이었던 게 아닐까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겐타로는 그런 하늘을 보며 걷고 있었다. 걷다가, 보다가, 걷다 보면, 근근이 파란 하늘 조각이 보였고 그럴 때면 하늘색이 반갑다가도 먹먹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먹먹한 하늘을 바라보는 제 가슴속에도 구름이 잔뜩 껴있는 것 같았다. 하늘을 뱉어내고 싶은 기분을 느끼며 하얘진 하늘만큼이나 하얀 건물로 겐타로가 들어선다.
“오랜만이네 겐타로.”
들어선 병실에서 조금 꼬깃 해진 병원복을 입은 청년이 창가에 선 채 겐타로를 웃으며 반긴다.
“응, 요즘 잘 못 왔었네. 미안해.”
“아니야 나야말로 매번 찾아와주는 게 고맙지. 원고가 바빴어?”
“뭐, 그렇지.”
거짓말이지만, 청년은 더 캐묻지 않았다. 청년은 그저 웃으며 베드에 엉덩이를 걸터앉는다.
“겐타로. 오늘은 눈이 오려나 봐.”
“벌써 그럴 때가 됐나? 일기예보에선 별말 없었는데.”
“원래 첫눈은 예기치 못할 때 오잖아?”
“그런가?”
겐타로가 청년이 앉아 있는 곳 옆으로 가 서서 창밖을 바라보며 지난 첫눈들을 기억 속에서 더듬어본다. 그런 겐타로를 보며 청년이 슬며시 웃으며 말을 잇는다.
“응. 좋아하니까 알아.”
청년의 목소리에 창밖을 바라보던 겐타로의 시선이 청년에게로 돌려진다.
“눈, 좋아했던가?”
“엄청 좋아하지. 겐타로가 자주 이야기해줬잖아? 어릴 적 설국 이야기. 난 그 이야기가 제일 좋았거든.”
“아하하, 뭐 다 거짓말이지만?”
입을 가리곤 웃어 보이는 겐타로에게 병원복을 입은 청년이 입을 크게 휘며 웃어 보인다.
“좋아하는 건 의외로 단순한 거니까.”
청년이 동의를 구하듯 몸을 숙여 겐타로의 얼굴을 마주 본다.
“생각하는 것, 누구에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거나, 또 하고 싶다, 또 먹고 싶다.처럼 다음을 바라게 된다거나.”
다정한 청년의 목소리가 클래식 음악처럼 잔잔히 작은 병실을 채운다.
“눈치 채보면 아, 나 그 생각만 하고 있구나 싶다든가. 그런 거 아닐까?”
청년의 진한 색의 눈이 겐타로의 눈을 꿰뚫듯 마주 해온다.
“겐타로는 어때? 좋아하는 거 있어?”
*
병원에서 나오자 해가 짧아진 탓인지 하늘은 금세 군데군데가 붉었다. 지는 해에 부는 바람은 더 차게 느껴지고. 그 탓인지 겐타로의 귀와 볼도 노을 낀 하늘마냥 군데군데가 붉어졌다. 겐타로는 어깨를 웅크린 채 급하게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빨리 집에 가야지. 겐타로의 재촉 탓에 추운 귀갓길은 언뜻 보면 무언가에서 도망가는 듯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걷기도 수 십분, 어느새 시부야 외곽까지 다다랐고, 급한 겐타로만큼 태양도 급했는지 공기 중엔 깊은 어둠이 깔려 골목 길길에 가로등이 하나 둘 차례를 지켜 켜지고 있었다. 어두운 길목엔 제 한몫만큼만 길을 비추는 가로등들이 어깨동무를 한 채 부지런히 빛을 내뿜고 있었고, 그리고 그런 빛기둥 아래론.
“아, 첫눈이다.”
구름의 부스러기 같은 작은 눈들이 내려온 빛 사이사이를 작게 흔들리며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첫눈은 예기치 못할 때 온다더니, 진짜네. 겐타로는 그렇게 생각하며 내리는 눈 하나를 잡아 눈으로 좇는다. 그리고 그 눈 아래론,
“여. 겐타로.”
다이스가.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겐타로는 오랜만에 마주한 다이스의 얼굴이 새삼 낯설어 미간을 찌푸려 초점을 다잡는다. 요 며칠 계속 생각하려 해도 지독히도 뒷모습만 보여주던 그였다. 겐타로는 왠지 그런 다이스가 뻔뻔하게 느껴져 쥐고 있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다이스는 대체, 어디 가서 뭘 하고 지냈던 거죠? 갑자기 사라져선.”
“미안, 미안~ 걱정 끼쳤냐? 그래도 보다시피 건강하다고? 장기도 아직 털린데 없이 무사하고. 돈은 좀 털렸지만.”
평소 같은 다이스의 목소리에 먹먹했던 가슴이 조금은 풀어지는 기분이 들어 겐타로는 쥔 주먹을 천천히 펴곤 다이스의 옆을 지나쳐 다이스를 등에 진 채 현관 앞에 선다.
“정말. 라무다도 말은 그렇게 안 해도 걱정했을 테니까요. 내일은 라무다에게도 연락해 주세요. 다이스가 어딜 가서 뭘 하든 저희가 이래라저래라 할 건 아니지만, 적어도 팀원이라면 귀띔 정도는 해주고 가시고요.”
추위 탓에 차가워져 있던 열쇠와 틈이 차가운 쇳덩이들끼리 부벼지는 소리가 나며 열린다.
“그랬냐? 미안하네. 그리고 그냥 오늘은 얼굴이나 잠깐 보고 가려고 온 거니까.”
“가요?”
의외의 말에 고개를 돌려 바라본 다이스의 얼굴이 웃음기 없이 쓸쓸했다. 늘 왁왁 대고 성격은 급하고 목소리만 크면 단 줄 아는 것 같지만 늘 웃음기 섞인 얼굴로 저를 보던 다이스였다. 그랬던 것 같다. 아니었나? 겐타로는 오래간만에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한 다이스의 얼굴이 낯설고 어색하고 혼란스럽고 그래서 그런 그의 표정에 너무 놀라서, 황급히 고개를 돌려 살짝 틈을 내며 열린 채 식은 문으로 시선을 옮긴다. 또다. 조금 풀리나 싶던 답답함이 또 가슴을 뭉근히 채워 몸 곳곳이 무거웠다.
“다이스.”
겐타로의 부름에 한 박자 느리게 그의 대답이 돌아온다. 답답함은 가슴 깊은 곳에서 갈비뼈로 쇄골로 배로 목으로 점점 퍼지더니 이내 발끝과 손끝 곳곳까지 다다랐다. 문고리를 쥔 손 마디마디가 추를 단 듯 저렸다. 현관문이 이렇게 무거웠나? 그게 아니면.
“어차피 갈 곳도 없을 거 아닌가요? 눈도 오는데, 오늘은 그냥 저희 집에서 자고 가세요.”
“신경 써줘서 고마운데 더 신세를 질 수는 없지. 괜찮아.”
몸 가득 찬 이게 뭔지 몰라도, 뭐여도 뱉고 싶었다. 하늘이든 눈이든 오늘 내내 함께 걸었던 태양이든. 겐타로는 다이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말을 잇는다.
“다이스 아직 저를 좋아해요?”
겐타로의 물음에 다이스의 대답이 바로 따라오지 않고 둘 사이에 긴 빈칸이 늘어진다. 굵어진 눈송이 몇 개가 문고리를 쥔 겐타로의 손 위로 떨어졌다, 금세 형태를 잃고 녹아 없어진다.
“미안.”
손을 잡고 뭉쳐져 내려오던 큰 눈송이가 겐타로의 엄지를 간질이다 바닥으로 떨어진다. 다이스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어요? 어떤 표정으로 절 바라보고 있어요? 어떤 눈으로. 머릿속에 다이스만이 가득했다.
“뭐가 미안해요?”
“신경 쓰이게 해서 미안. 여러모로.”
“왜... 왜 미안해요.”
등 뒤로 다이스가 머리를 부비작대는 소리가 들린다.
“아아~ 너 말대로 우린 팀원인데, 내가 괜히 혼자 널 좋아해버려서 너한테도 라무다한테도 폐만 끼치잖아. 나 때문에 서로 불편하기만 하고. 아으으! 지금도 진짜 어색하다고 이게 뭔데. 네가 나쁜 게 아니라 내가 잘못한 거니까? 넌.. 신경 안 써도 된다, 뭐 그런 거지. 아, 나도 지금 내가 뭐라는 건지 모르겠네.”
다이스의 큰 목소리가 한적한 골목 곳곳에 튕겨져 왁왁 대며 돌아온다. 겐타로는 울리는 귀에 멀미가 날 것 같았다. 손에 힘을 잔뜩 주곤 얼굴을 숙여 제 품속으로 숨듯 말며 현관 벽에 머리를 기댔다.
“제,”
“엉?”
“제... 대답을 안 들으셨잖아요.”
“그건 들으나 마,”
다이스의 말이 끝맺지 못하고 끊긴다. 멀미 기운이 더 올라온다. 속이 울렁거리고 얼굴이 홧홧 거리고 뜨거워서 왜 말을 마저 안 하냐 다이스를 책망하고 싶은데 다이스를 돌아볼 용기가 나질 않았다. 다이스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보는 게 겁도 났다. 어떤 얼굴로 지금. 어떤, 표정으로, 눈으로.
다이스가 겐타로의 어깨를 감싸 쥐곤 낚아채듯 돌린다. 그 탓에 감출 겨를 없이 그들의 얼굴이 서로를 마주한다.
아, 이건 사랑에 빠진 얼굴이다.
감격도 잠시, 마주하곤 급하게 부딪혀오는 다이스의 입술에 겐타로의 시야가 천천히 어둠으로 감겼다.
*
다이스가 겐타로를 뒤에서 꼭 끌어안은 채 둘은 같은 이불 위에 누워있었다. 키가 같아 빈틈없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닿아 있었다. 틈 없이 닿은 곳곳에 온기가 쉴 틈 없이 퍼져서 온몸이 녹듯이 노곤하다. 다이스가 겹쳐진 발끝을 세워 겐타로의 발을 간질인다. 겐타로가 자잘한 웃음을 흘린다.
“하지 마요. 다이스.”
“고마워 겐타로.”
“뭐, 전부 다 거짓말이었지만요?”
“냑! 진짜냐?!”
“아뇨. 거짓말이에요.”
다이스가 겐타로의 어깨에 얼굴을 묻으며 바람이 부서지듯 웃는다. 그의 웃음이 겐타로의 어깨에 녹아 스며든다.
“좋아해 겐타로.”
좋아해 줘서, 고마워요. 다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