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미한
여름의
기억
* 다이스와 겐타로의 과거가 심하게 날조되어 있습니다.
“겐타로.”
“네?”
“너는 첫사랑 같은 거 없어?”
뜬금없는 질문에 책에 고정되어 있던 겐타로의 시선이 제 무릎을 베고 누워있는 다이스에게로 향했다. 다이스 역시 잡지를 들고 있던 팔을 슬그머니 내려 겐타로를 쳐다봤다. 애인의 첫사랑을 궁금해 하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긴 해도, 이렇게 아무 맥락 없이 물어보다니요. 새삼스럽게 궁금해진 이유가 뭘까, 잠시 고민해봤지만 질문을 한 사람이 다이스였기에 결론을 내리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마 잡지에 첫사랑과 관련된 사연이라도 실려 있었던 것일 테지.
“전에 한번 얘기한 적 있지 않나요?”
“없거든. 애초에 너, 네 얘기는 잘 안하는 편이잖아.”
“이런, 안 넘어가주네요. 첫사랑이라고 해봤자…, 딱히 기억나는 사람이 없어서요.”
“거짓말 아냐?”
“아쉽게도 이번에는 진짜예요.”
소생이 항상 거짓말만 하는 건 아니랍니다. 겐타로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그에게 부러 우스꽝스러운 목소리를 내며 대답을 피했다. 첫사랑이라. 기억나지 않는다고 대답한 후에 다시 생각해보아도 역시 특정 인물이 떠오르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따지면 제 첫사랑은 다이스인 걸까. 그대로 내뱉었다면 연인으로서는 꽤 괜찮은 답변이 되었겠지만 이미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고 대답한 뒤였으니 한 박자 늦은 생각일 뿐이었다. 만족할 만한 대답이 되지 못했는지, 마주하고 있던 다이스의 시선이 다시 그의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던 잡지로 향하려는 찰나, 겐타로가 같은 질문을 다이스에게 되물었다.
“그러는 다이스는요? 다이스도 딱히 있었을 것 같진 않은걸요. 어라, 그렇다면 소생이 다이스의…?”
“야, 아니거든…! 아니, 물론 지금은 겐타로 너밖에 없긴 한데, 그래도 아예 그렇게 없었을 거라고 단정하지는 말라고!”
“그러면 누군가 있었나 봐요? 어떤 사람이었어요?”
“그걸 따지자면 뭐…, 없는 쪽이기는 해도….”
살짝 도발을 하듯 놀렸을 뿐인데 발끈하더니 말끝을 흐리는 것까지 전부 겐타로가 예상했던 반응 그대로였지만 그 반응이 보고 싶었다. 그래도 저밖에 없다니까 기분은 좋네요. 일어나 앉은 다이스의 옆으로 슬금슬금 자리를 옮겨앉아 어깨에 살포시 머리를 기댔다. 멋쩍게 머리끝만 만지작대며 말꼬리를 늘이던 다이스가 들릴 듯 안 들릴 듯 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말을 겐타로는 놓치지 않았다.
“첫사랑일 뻔 한 사람은 있는데 말이지….”
*
겐타로는 첫사랑이면 첫사랑인거고 아니면 아닌 거지, 첫사랑일 뻔한 건 뭐냐면서 관심을 보였지만 그다지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언제쯤의 일이었는지도 이제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그 날의 날씨가 지겨울 정도로 더위가 이어지던 나날 가운데 유난히 더웠던 것만이 기억날 뿐. 유난히 더웠다는 날씨도 그냥 제가 그렇게 기억하고 있을 뿐이고 사실은 여느 날과 그다지 차이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이미 시간이 꽤 지나버린 기억은 바랠 대로 바래져 장소 따위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할 정도로 희미해져 있었지만 그를 처음 봤을 때의 모습만큼은 마치 그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두기라도 한 것처럼 뇌리에 박혀 있었다.
그 사람의 나이나 이름 같은 기본적인 정보는 고사하고 그가 그 곳에서 뭘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그 사람의 얼굴과 그 사람이 마지막에 자신에게 했던 말 뿐. 여느 때처럼 집을 몰래 빠져나와 근처의 공원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구경하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그 때 그가 하고 많은 자리를 두고 하필이면 제가 앉아있던 벤치의 한 쪽 끝에 와 앉았다.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책을 꺼내 읽고 있었다. 단정하게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이 꼭 사진보다는 누군가가 의도하고 잘 그려낸 그림처럼 제 기억에 남아 있었다. 차림새는 고급스러운 것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깔끔했고, 무엇보다 그의 외모가 눈길을 끌었다. 혹시 그와 눈이 마주칠까,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해도 마치 홀리듯 제 눈은 어느새 다시 그 사람을 향하고 있었다. 폭신해 보이는 연갈색 머리는 하얀 목덜미를 드러낼 듯 아닌 듯 덮고 있었고, 다른 사람이었다면 할아버지 같다며 놀려댔을 법한 은빛 테가 얇은 안경 너머로 녹색의 눈동자가 언뜻언뜻 비쳤다. 그를 보고 처음 든 생각은 예쁜 사람, 그에 이어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할 말 있어?”
“어…, 어?!”
그렇게 빤히 보고 있었으니 눈치를 못 챌 리가 없었겠지만 막상 그가 읽던 책을 소리 나게 덮으며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자 말문이 막혔다. 어떻게 말을 건네야 할까, 고민하던 단어의 조합은 이미 머릿속에서 잔뜩 엉켜버려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런 중에도 책 위에 가지런히 올려둔 가느다란 손가락이 눈에 들어왔다. 젠장, 손도 예쁘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한참을 쳐다보고 있었던 주제에 정작 그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제 시선은 갈 곳을 잃고 그의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하지.
“계속 보고 있었잖아. 할 말 있냐고.”
“누나 되게 예뻐서.”
하고 싶었던 말이지만 이런 말을 하려던 게 아닌데. 그의 표정이 황당함으로 물드는가 싶더니 곧이어 소리 내어 웃었다. 웃음소리가 높아질수록 제 얼굴도 조금씩 화끈거렸다. 진심으로 한 말인데. 말을 덧붙이려다가 지금 그 말을 꺼낸다면 오히려 폭소를 터뜨릴 것만 같았기에 목구멍 너머로 말을 다시 우겨넣었다. 웃을 때 눈꼬리가 살짝 접히며 올라가는 것이 예쁘게 보였다. 누나가 그렇게 예뻤어? 그런 얼굴로 물어보면 이쪽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고는 대답할 방법이 없는데. 처음의 까칠했던 태도도 제법 누그러져서 그 이후로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눈 것 같은데 어떤 내용의 대화를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가 관심이 있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면 녹색 빛의 눈동자가 빛내며 말하는 것이 굉장히 예뻤다, 정도 밖에는. 그는 조용해 보였던 첫인상과는 다르게 말이 많은 사람이었고 이야기에 재주가 있는 사람이었기에 지루하지 않았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느새 그의 연갈색 머리가 노을에 물들어 적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가 슬슬 가봐야겠다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대로 헤어지기에는 아쉬웠다.
“내일도 만날 수 있어?”
“내일?”
“응. 내일이 아니어도 괜찮아.”
"음…."
그가 일순 난처한 표정을 지었고 그의 고민이 길어짐에 따라 제 초조함도 더해졌다. 저를 빤히 쳐다보는 녹색 눈동자 너머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알고 싶었지만 읽을 수 없었다. 나중에 다시 만나러 올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빈말일 뿐이었지만, 그 때의 자신은 어렸고 그의 말을 기약 없는 약속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
"다이스답지 않게 귀여운 이야기네요."
"그래서 처음에 너 봤을 때 엄청 놀랬다고. 그 누나랑 똑같이 생겨서."
"어라, 그러면 다이스는 저를 그 분 대신이라고 생각하고 만나는 건가요. 좀 슬픈데요."
겐타로가 소매를 들어 눈물을 훔치는 척 눈을 닦아냈다. 다이스 역시 그의 행동이 연기에 불과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뼈가 있는 말에 왠지 머쓱해져 은근슬쩍 겐타로의 허리께에 팔을 두르고 실실 웃어 보이는 것으로 어색해진 상황을 무마하려고 했다.
"그냥 한 말이니까 이런 귀여운 짓은 안 해도 돼요."
"딱히 귀여우라고 한 건 아닌데."
"이것도 그냥 말한 거니까 그렇게 귀담아 듣지 말고요."
"야!"
"그나저나 다이스 이야기를 들으니까 하나 생각나는 게 있긴 해요. 첫사랑과는 아무 상관없지만."
*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열여섯 살 때의 일이었다. 처음이라고 해봐야 그 뒤로는 만날 일이 없었으니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지만. 정확한 시기까지는 짚어내지 못하더라도 공원의 여기저기에서 끊임없이 울리던 매미 소리로 그 날이 지독히도 더운 여름날이었다는 것만큼은 기억을 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생긴 친구가 한 번 가보고 싶다며 졸라대는 통에 와보게 되었던 도쿄는 한적한 시골 풍경만을 보며 자라왔던 제게는 혼이 빠질 정도로 정신없었고, 그런 중에도 인공적인 빛으로 점철되어 있는 야경과 그 아래를 분주하게 움직여 다니던 인파를 제외하면 기억에 남는 그림이 없을 정도로 심심한 곳이었다. 타인과 부딪히는 데에 익숙하지 않았던 제가 사람으로 가득 찬 시내를 거니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기운 빠지는 일이었고, 그런 제 눈치를 살피는 친구에게 원망스러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을 동시에 안고 있는 것도 자신을 꽤 지치게 만들고 있었다. 결국 마지막 날은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얘기를 나누고 자신은 숙소 인근의 공원으로 향했다. 주말 대낮의 시간대였지만 꽤나 더웠던 날씨 탓에 공원에 나와 산책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처음부터 사람에 치이는 것을 피하기 위해 공원에 온 제게는 오히려 고마운 일이었다. 나무 그늘이 적당히 드리워진 벤치에 앉아 책이나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가 짐을 챙길 예정이었다. 벤치의 반대쪽 끝에 앉아 노골적으로 자신을 쳐다보던 녀석만 아니었다면. 일부러 그에게 관심을 주지 않으려고 책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았음에도 그의 눈길은 여전히 자신을 향해 있었다. 결국 몇 번씩이나 집중이 흐트러져 읽고 있던 문장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단순히 흰 종이에 활자를 찍어낸 것으로 보일 즈음에 책장을 소리 내어 덮었다.
“할 말 있어?"
그렇게 쳐다볼 때는 언제고 이제 와 시선을 피하는 모습이 조금은 우습게 보였다. 그러면 그걸 모를 줄 알았던 걸까. 무슨 말을 하든 적당히 상대하고 무시하려 했는데 한참을 우물쭈물 대던 녀석이 뱉은 생각도 못했던 대답에 귀를 의심했다. 누나가 예뻐서. 누나라니, 처음에는 저를 놀리려고 하는 말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귀까지 빨개져서는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며 멋쩍어하는 모습이 아무래도 저를 놀리려는 심산은 아닌 것 같았다.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지나쳐 갈 수도 있었겠지만, 누나라는 말 한마디가 제 관심을 끌었다. 웃음이 나왔다. 소리 높여 웃을수록 어쩔 줄 몰라 하는 그의 반응을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누나가 그렇게 예뻐?“
억지로 가늘게 낸 목소리가 부자연스럽게만 들려 눈치 채지 않을까 잠시 걱정한 것이 무색하게 연신 고개만 끄덕이는 모습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쓸 데 없는 걱정이었던 모양이다. 순진한 건지 바보인 건지, 일단은 순진한 쪽이라고 생각해 주는 게 좋겠지. 잠시 제 주변을 배회하던 시선은 다시 저에게 꽂힌 순간부터 떨어질 줄을 몰랐다. 이름이 뭐냐고 묻는 말에 뭐라고 대답했더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적당히 지어낸 이름으로 대답했을 것이다. 제 이름을 밝혔을 때 자기 이름은 뭐라며 묻지도 않은 대답을 했던 것 같지만 귀담아 듣지 않았기에 그마저도 잊어버렸다. 저에게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게 많은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게 귀찮았을 법도 한데 일일이 꾸며낸 말로 대답해주던 자신도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를 귀찮다고만 생각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누나는 몇 살이야?“
"몇 살 같아보여?"
"으음…. 모르겠어, 알려줘."
"말 안 해줄래. 네가 생각해 봐."
"아, 알려줘! 나랑 차이 많이 나면 안 된단 말이야!"
네 살 차인가. 열두 살이라는 녀석의 말을 듣는 순간 자연스럽게 계산을 하다 아차 싶었다. 어차피 오늘 보고 말 텐데 나이 차이가 무슨 상관이고 많이 나면 안 될 건 또 뭐람. 그의 나이를 의식하고 보니 입고 있는 옷이라든지 차림새나 말씨같은 것이 의외로 꽤 고급졌지만 장난기가 그대로 겉으로 드러나는 표정이나 좀처럼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그의 행동은 딱 그 나이대 아이의 그것이었다.
"그런데 너는 여기서 뭐 하고 있었어?"
처음 봤을 때부터 줄곧 의문이 들었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나온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애초에 혼자 공원 벤치에 앉아 뭘 하고 있었던 걸까. 집 나왔어. 그는 간단하게 대답했지만 간단하게 듣고 넘길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집을 나오다니, 순간 '가출 청소년들의 실태' 따위의 헤드라인을 달고 떠들어대던 뉴스 기사가 머리에 스치고 지나갔다. 오늘이 지나면 아마 볼 일도 없을 사이에 이렇다 저렇다 잔소리를 하는 것도 우스운 상황이었기에 잠자코 그의 말을 들어 주려고 했다. 하지만 이야기는 심각한 말로 운을 뗀 것에 비교하면 허무할 정도로 가벼웠다. 집에만 있으면 재미가 없어서 몰래 빠져나오곤 한다고. 자기는 운이 좋아서 지금까지 한 번도 걸린 적이 없다며 자랑스레 말했지만 글쎄, 그게 과연 정말 운이 좋아서 걸리지 않은 것이었을까. 그는 계속해서 비슷하게 소소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재잘거렸다.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시시하다고 듣는 둥 마는 둥 했을 법한 이야기도 제게는 이제껏 들어볼 일이 없었던 새로운 이야기였기에 제법 재미있게 들을 수 있었다. 제 얘기를 꾸며내기까지 하며 그의 이야기에 호응해주기를 한참, 읽으려고 들고 나왔던 책은 결국 몇 장 읽지도 못한 채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지만 그다지 손해를 봤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내일도 만날 수 있어?"
만날 수 있을 리 없다. 고개를 가로젓기도 전에 그의 표정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차피 그가 기억하는 자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꾸며낸 사람일 뿐이니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정도는 상관없지 않을까.
"나중에 다시 만나러 올게."
*
"야, 잠깐만. 잠깐만…! 그러면 설마 너…!“
"네? 설마라뇨?“
"시치미 떼지 마! 완전히 내 얘기잖아…!"
겐타로의 이야기가 시작했을 무렵부터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가만히 듣고 있던 다이스가 결국 끝까지 제대로 듣기도 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앉아 봐요. 손끝으로 방석을 톡톡 매만지는 손짓에 다시 제 자리에 앉았지만 다이스의 시선은 겐타로의 얼굴에 못 박듯 고정된 채 움직이지 않았다. 잔뜩 놀라 당황한 다이스와 달리 겐타로는 언제나처럼 평온한 표정으로 다시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렇다면 다이스의 첫사랑이 결국 저였던 건가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겐타로는 다이스의 무응답을 긍정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다행이네요. 제 첫사랑은 다이스거든요. 그 때의 일은 아니지만."
"뭐? 진짜?! 나하고 사귀기 전에 맨날 연애 엄청 해본 것처럼 말했으면서!"
"당연히 거짓말이죠. 그걸 믿었어요?"
다이스가 또 속았다며 펄쩍 뛰기 전에 겐타로의 입술이 그의 뺨에 가볍게 닿았다 떨어졌다. 쪽, 한 번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는지 뾰로통한 표정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쪽, 한 번 더 뺨에 닿은 입술이 떨어질 때에 다이스가 양 팔로 겐타로를 껴안았다. 귀까지 빨개진 얼굴을 제 어깨에 파묻은 채 뭐라 웅얼대는 모습이 겐타로의 눈에는 마냥 귀엽게만 비쳤다.
“그런데 제가 이야기를 그렇게 잘 하는 편이던가요?”
“뭐…, 사실 기억은 잘 안 나지. 그냥 네 얼굴만 넋 놓고 보느라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고.”
“듣는 사람 입장에서 민망한 소리를 되게 아무렇지도 않게 하네요.”
“야, 말하는 나도 민망하니까 그냥 넘어가주라, 좀.”
“아무튼, 적어도 다이스가 그렇게 믿고 있는 걸 보면 제가 제법 재주가 좋긴 한가봐요.”
“엉?”
“방금 제 얘기, 다이스가 해준 얘기에 맞춰서 적당히 지어낸 얘기였거든요.”
다이스의 품에 안긴 채로 중얼거렸던 마지막 문장은 이번에도 또 속인 거냐며 앓는 소리를 내는 목소리에 묻혀 그의 귀에는 들리지 못했다. 뭐, 사실 거짓말은 이 쪽이지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