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무슨 낙을 보겠다고 여기까지 와서. 처음에 든 생각은 그거였다. 선생님, 요새 글이 안 써지시는 건 알고 있지만 이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테이블 앞에 앉은 편집자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마음에 안 들면 그 원고 들고 다른 곳으로 가겠습니다, 하고 싶었지만 나 또한 찌푸린 미간을 꾹꾹 눌러 필뿐이었다. 그 말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정도로 철면피는 되지 못했다.
슬럼프에 빠지신 거라면, 어디 잠시 쉬고 오시는 건 어떠십니까. 산이나, 바다나요. 아무튼 휴양 말입니다. 아니, 이번 작품 쓰면서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 썼는데 그런 말을 한단 말이지. 나는 살풋 웃으면서 대답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다만, 한 달 동안은 마감 없이 쉬게 해주시겠어요. 편집자는 한참을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테이블 위의 컵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간단한 짐을 들고 무턱대고 산을 오르고 있었다. 어느 집에라도 몸을 두어야겠다. 창 밖에 보이는 게 사람이 아니라 하늘과 나무라면 영감이 살아나지 않을까. 물론 지금 같은 등산에는 전혀 기예가 없었다. 오히려 싫어했다.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다. 글을 쓴다고 한참을 앉아만 있었으니 체력은 한참 떨어졌다. 헉, 헉. 벌써 숨이 찼다. 새파란 입김이 나왔다. 새벽빛이 위에서 쏟아져 내려왔다. 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냈다. 일곱 시 십사 분.
달라 보이지만 영 같은 풍경이었다. 어쩌면 여기도 내가 있던 도시와 똑같은 거 아닐까. 굳이 여기를 올라가는 데 의미가 있을까. 옷깃으로 땀을 가볍게 닦았다. 그렇게 생각하던 도중이었다. 내 오른쪽에 작게 샛길이 나 있었다. 바닥에 풀이 자라 있지 않은 것을 보아 사람들이 많이 다닌 길이다. 나는 가던 길을 슬쩍 바라보았다. 계속 이렇게 위로 오르는 것보다 옆으로 가는 게 나을 수도.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러지 뭐. 나는 샛길로 발을 들였다. 딱 한 사람이 지나가기에 맞는 길이었다. 옆의 가시나무에 계속 옷깃이 그였다. 여기고 저기고, 제대로 되는 일이 없네. 한숨을 푹 쉬고 계속 앞으로 걸었다. 끝에 무언가 보이기 시작했다. 잠시 쉬다 갈 수 있다면 좋겠는데. 아까도 쉬어 가기 괜찮은 자리를 보긴 했지만 벌레가 너무 많은 것 같았다.
멀리서 보이던 것의 정체는 푸른 토리이였다. 신사의 입구인 모양이다. 꽤 안쪽으로 들어왔는데 이런 신사가 있다니. 그래서 길이 터져 있었던 걸까. 기둥에 무언가 할퀸 자국이 있고 원래 써져 있던 글씨도 흐려져 보이지 않았다. 무성하게 자란 풀이 바람에 이상한 소리를 냈다. 관리가 잘 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지금으로써는 만족스러웠다. 쉬어 갈 곳이 되겠구나. 나는 이끌리듯이 토리이 안으로 발을 들였다.
신사는 꽤 큰 규모였다. 바닥에 차이는 나뭇잎을 즈려밟으며 가까운 마루에 앉았다. 짐을 내려놓자 삐그덕, 하는 소리가 났다. 그 또한 푸른색이었다. 이 신사의 신이 좋아하는 색이었을까. 보통 신사는 주황색이었다. 제가 이제까지 봐 온것들만 해도 그랬다. 아니, 이제 와서 이런 것 따져 봐야 무엇 하나. 조금 쉬다가, 참배만 하고 가야지. 한숨을 푹 쉬었다. 주머니에서 다시 회중시계를 꺼냈다. 안쪽에 넣어 두었는데도 차가웠다. 여덟 시 이 분이라. 벌써 그렇게 됬단 말이지.
그 때였다.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급하게 돌렸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있었나. 뒤의 비석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사람이다. 절대 동물이나 벌레의 기색이 아니었다. 그 둘이라면, 이런 소리를 낼 수 없다. 나는 입을 열었다.
“…….계십니까?”
또다, 또. 발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확실하다.
“이리 나오세요.”
해치지 않습니다, 는 너무 거창한가. 풋, 하고 웃어 버렸다. 웃음소리를 들었는지 그 사람은 모습을 드러냈다. 푸른 생머리에 분홍색 눈. 녹색 유카타를 대충 걸쳐 입은 남자였다. 신발은 신지 않았다. 머리 위에는 귀가 나 있었다. 꼭 동물의 귀 같았다. 그래, 여우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아, 아니. 그거 진짜인가요?”
“뭐가?”
“귀 말입니다.”
말을 듣자마자 귀가 쫑긋거렸다. 그러고 보니, 뒤에 꼬리도 있구나. 더 헷갈리기 시작했다. 대체 뭐야.
“당연하지? 이래봬도 신이라고.”
“......신이요?”
그는 제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부드러운 꼬리가 제 손등을 간질였다. 손을 거두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이상했다. 처음 본 사람한테 무슨 재미가 있다고 거짓말을 치겠는가. 신이라는데, 믿어도 되지 않을까. 아니, 아니다. 판단력이 흐려진 거야. 나는 고개를 젓고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 신. 오자마자 인사도 안 하고 앉아 버리길래 얼마나 섭섭했다고.”
“......”
“못 믿어?”
이렇게 눈앞에 있는데. 그는 얼굴을 살짝 제 쪽으로 들이밀고는 씩 웃었다. 다시 한 번 귀가 쫑긋거렸다. 쥐고 있는 회중시계의 차가움은 그대로였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