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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이와 한지는 결혼을 약속한 사이다, 공식적으로 발표한 적은 없지만.

사귀자던가, 애정을 담은 말들을 서로 속삭이던 사이는 아니었다. 사선을 함께 넘은 전우, 스러진 심장들을 기억하는 사이, 조사병단의 살아남은 유일한 간부, 서로의 눈물을 받아내던 관계.

둘은 어떤 관계도 될 수 있었다. 그러했던 둘의 관계가 정리된 건 청혼 이후였다.

 

‘리바이, 언젠가 세상이 잠잠해지면,’

 

어느 날의 밤에 한지는 그렇게 말했다. 어깨에 이마를 기댄 한지가 리바이의 품으로 조금 더 파고들었다. 한지는 리바이의 어깨에 자신의 이마를 문질렀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의 감촉이 느껴졌다.

 

‘그러면 같이 살자.’

 

어둠 속에서 연약하게 떨리는 목소리가 그렇게 말했다. 한지는 그리 청혼했다. 리바이는 한지가 가끔 자신의 앞에서만 지친 목소리를 낸다는 걸 알았다.

매달리듯 다가오는 체온이 안쓰러웠다. 리바이는 한지의 등을 감쌌다.

 

‘그래, 그러자.’

 

리바이는 그렇게 대답하며 그의 옆을 지켰다. 한지는 고개를 숙이고는 리바이의 품에 조금 더 파고들었다. 닿는 맨살은 따뜻했다. 숨결에 체향이 섞였다. 나쁘지 않았다. 얽힌 몸에서 심장 소리가 전해져 왔다.

 

명색이 청혼이었지만 반지를 주고받는 일도 없었다. 그 이후에도 반지를 나누어 끼는 일은 없었다. 그렇지만 한지의 그 말은 하나의 매듭이 되었다. 돌아올 곳, 돌아올 자리, 언젠가의 미래의 일. 둘의 관계.

 

+

 

“차라리 우리 둘이 여기서 살까.”

“…….”

“응……?”

“…….”
“리바이.”

“…….”

 

어둠 속에서 가느다란 정신을 차리자, 들리는 것은 한지의 말이었다. 리바이는 한지의 말에 침묵했다. 리바이가 입을 다물자 말의 여운이 고요한 숲을 맴돌았다. 리바이는 꿈결처럼 어느날의 한지를 떠올렸다.

 

 

“리바이, 인연이라는 건-.”

 

그날은 엘빈의 유해를 수습하여 장례를 마친 날이었다. 백골을 옷과 함께 화장하고, 단장의 예우를 맞추어 장례를 치렀다. 둘은 이제는 한지가 물려받은 엘빈의 집무실에서 엘빈의 마지막 짐을 정리했다. 불길이 사그라들기 전에 그에게 보낼 물건들이었다. 창밖을 바라보는 한지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인연이라는 건, 리바이는 한지가 이어 할 말을 기다렸다. 한지는 침묵했다.

 

“…….”

“…….”

 

한지가 고개를 돌려 리바이를 바라보았다. 유리창에 한지의 뒷모습이 비쳤다. 한지는 유리창에 대고 있던 손을 뗐다. 성큼성큼 리바이에게 다가간 한지는 리바이의 손을 잡고 그 손 위에 제 볼을 기댔다. 유리창에 닿아 있던 손은 차갑고 축축했다.

 

“아, 아니야. 여기에 있구나, 나는.”

“……한지.”

 

리바이는 한지가 삼켜버린 뒷말을 알 수 없었다. 한지는 휴, 한숨을 쉬더니 작게 웃었다. 그 모습이 어쩐지 아슬아슬했다.

 

“리바이, 네가 있어 다행이야.”

 

그 후에도 가끔 한지는 리바이와 시간을 보냈다. 엘빈 때도 그랬지만 이번 14대 단장의 자리는, 새로운 변환을 맞아 모든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는 면에서 살인적인 일정을 감당해야 하는 자리였다. 그런 와중에도 한지는 시간을 내어 단둘의 시간을 만들어냈다.

 

그때의 한지를 붙잡았던 건 무엇이었을까, 리바이는 먼지 맛이 맴도는 입을 열었다. 한지의 말에 대답하려 했는데, 순간 눈앞에 번쩍였던 환상 때문에 정신이 들었다.

 

리바이, 언젠가 세상이 잠잠해지면, 그러면 같이 살자.

 

머릿속에 한지의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리바이에겐 먼저 끝내야 할 맹세가 있었다. 짐승, 그, 개자식은, 어디 있지. 리바이의 말에 한지는 리바이를 눕혔다.

리바이는 아픔에 절면서 말을 이어갔다. 짐승 거인은 놓쳤다. 자신을 걱정하는 눈으로 내려다보는 단장에게 리바이는 그렇게 보고했다. 그리고,

 

“이대로…… 도망쳐 숨어봤자……, 뭐가 남지……?”

 

리바이는 한지의 고백을 거절했다. ……뭐야, 내 혼잣말 듣고 있었냐……. 한지의 뺨이 붉게 달아올랐다. 리바이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

 

비행기가 날아올랐다. 한지의 희생으로 날아오른 비행기 안은 울음바다였다. 심장을, 바쳐라, 리바이는 그에게 그렇게 작별인사했다.

 

인연이라는 건,

 

문득 한지가 마치지 못한 말이 떠올랐다. 인연이라는 건, 너와 내가 지내온 시간은…….

비행기가 떠오르는 감각과 함께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리바이는 본능적으로 한지의 죽음을 직감했다.

그때야 비로소 리바이는 깨달았다. 아아, 한지. 인연이라는 건, 한지와 리바이를 살게 하던 건 그것이었다. 한지, 알고 있었나. 그 매듭이, 한지를 이 땅에 붙어있게 했을 거라고, 리바이는 생각했다.

이제 리바이를 땅에 붙여 놓는 것은 짐승 거인을 죽이겠다는, 낡고 헤진 맹세밖에 없었다.

 

“……잘 가라, 한지.”

 

곧 그를 따라갈 날이 머지않았다고, 실낱같은 끈에 발끝이 닿지 않을 정도로 뜬 채로, 리바이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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