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본문 투토.png

“닌자는 사람에게까지도 손을 대는 직업이다. 그걸 몰랐다니

그런 거짓말을 하는 넌 이렇게 고통받아도 싸다.”

몬지로가 무고한 사람의 목숨을 해쳤다.

비록 닌자에게 일상 아닌 일상이라지만 사실 나조차 입에 담기 싫은 일임은 사실이다. 정확히는 한동안은 기억남아 계속 이어질 그 순간이 불쾌하다. 특히 누군가가 싸늘히 식어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저마다 좋은 생각은 차마 들지 못할 것이다. 내가 해한 것이 나와 같은 사람라면 나또한 계속 좋지 못한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나도 저렇게 길에서 아무도 모르게 죽어간다는 생각이 자리 한켠에 계속 머물게 된다는 이야기다. 사람 죽여 놓고 나도 겁난다는 소리라니 어이가 없을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적을 눕혔지만 다음번은 내가 될지도 모른다. 사람을 죽인 압박감이 다시 내 스스로 잊지 못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게다가 계속 위험한 곳에 노출되는 게 업이다보니 주변엔 늘 그때를 회상케하는 것들이 가득하다. 그래선지 난 5학년 때 처음 저지른 일조차 졸업후인 지금도 잊고 살지는 못하고 있다. 한때는 닌자가 천직이라고 불리던 나조차 이러는데 자신에게도 괴팍하지만 사람 좋아하던 몬지로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금은 우스울 일이다. 하지만 내게 걱정받을 만큼 연약한 놈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지켜져야 할 판국이다. 어찌나 단단한지 그 녀석은 추운 곳에서 자도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아 연못에서도 잘잤다. 반면에 후배들에게 미움도 받고 일에도 많이 휘말렸다. 수많은 실습에서도 살아남았지만 정작 사람은 죽이지 않았다. 깐깐하게 그지 없어 실력을 키워 누구 하나라도 더 살려보내려 자주 헛고생을 했다. 그렇기에 짝사랑보다도 ‘저런 녀석을 나라도 도와줘야지 누가 도와주겠는가’라는 마음 가짐이 당연하단 듯 있었다. 물론 우리 둘 다 상냥함과는 멀었지만 최선을 다 해왔다. -옆반과 옆옆반에 비하면 약과지- 몬지로는 누군가를 도와줘도 짐이 되지 않게 난 몬지로의 짐을 조금은 짊어져주는 사람으로. 그 오지랖이 옮은 것인지 내 빈자리에 항상 좋은 애들만 있는 것은 아니고 이상한 놈들도 꼬였다. 하지만 그만큼 다양한 일이 있었고 난 충분히 해결하며 지냈으니 -몬지로도 꼴엔 양심이 있어 날 제대로 도왔다- 만족한다. 몬지로 때문에 조금은 아니 많이 해이하게도 보낼 수 있던 인술학원이 즐거웠다. 그리고 조금이나마 기대를 걸게 됐다. 지금 앞에서 덜덜 떨고 있는 게 몬지로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

 

 

봄이 오면 늘 꽃이 떨어질 비가 내리는 때가 있는데 오늘이 그날이였나보다. 덕분에 봄비가 

슬슬 와서 일도 없고 가만히 있으려니 게으른 듯 해 도롱이를 두르고 산책겸 운동을 다녀오고 

집을 정리하고 쓸데없이 보낸 하루였다. 비가 오늘 하루만 딱 내릴 건지 딱 그쳐가려던 즈음

의 밤이였다. 집 문을 누군가 두드리는 게 아닌가.

아뿔싸 벌써 이 집도 들킨 건가? 이사온지도 얼마 안됐는데..

애써 변성해 대답하려던 찰나였다.

센조.. 혹시 있어..?

그건 정말 내가 불쌍해질 정도로 변함없는 몬지로의 목소리였다.

 

 

-

 

사실 내가 집을 알려준 사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이사쿠는 새 집을 얻자마자 알려주었

다. -지금은 거의 단골주막수준이다- 뭐 굳이 꼽자면 몬지로도..? 이사쿠에게 집을 알려준 이

유는 간단하다. 이 곳은 전쟁 이 잦게 일어나는 곳에서 조금 벗어난 안전지대의 마지노선인 

지역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전장의인 그가 내 신변에도 위협이 되지 않으니까. 어차피 아무 전쟁을 다

니며 사는 전장의이기에 날 노릴 일이 없다. -애초에 사람을 공격해본 적은 있기나 한지 의심

이 될 지경이다- 아무리 그래도 오가는 걸 보는 사람은 어떠하겠나? 전장의라는 만인의 표적

인 만큼 그를 노린 사람이 오는 것이 아닌가? 그걸 염두해도 도움이 되는 것들이 더 많아 그

저 함정을 설치해가면서라도 오라고 했다. 왜냐하면 현재 전쟁 상황과 경과 등을 알 수 있어 정세 파악에 많은 도움이 되는 거의 유일하고 귀중한 연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최근 벌이도 늘었다-. 물론 이사쿠한테 신세진 게 있으니 그만큼 베푸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내 상처를 치료한 보건 위원 중에 이사쿠가 있던 건 사실이니까. 물론 6년간 도와준 것보다 정세 파악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주는 것도 어이 없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나 먼저 살고봐야지. 그래선지 난 집에 들이기까지한 이사쿠조차 온전히 신뢰하진 못했다. 그가 잠시 잠들었을 때 가지고 다니는 구급상자에 이상한 것은 없나 몰래 뒤져보고서야 조금이나마 안심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두번째로 몬지로. 몬지로는 내 자의로 알려준 것도 아니였다. 솔직히 이사쿠의 설득 때문 이었지. 졸업 후 거의 연락을 하지 않고 이사쿠에게도 묻지 않았기에 작은 이 땅 어딘가에서 살아있는 것만을 짐작해왔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정세 얘기 중에 갑자기 이사쿠가 묻지도 않은 토메사부로나 기타 녀석들에 대한 얘기를 쏟던 찰나였다. 인술학원 얘기중이여서 그런 걸까 이사쿠는 갑자기 내게 몬지로의 안부를 물었다.

“아. 말 안했구나. 우리 연락 안해. 어차피 해봤ㅈ..”

“뭐????”

이사쿠는 그게 어지간히 충격적이었나보다. 그리곤 이내 너희 둘 다 어떻게 그렇게 매정하냐며 우리와 자신의 동실과 로반에 비교해댔다.

“잠시만 둘다?”

그건 몬지로도 만났던 거야? 아무리 잊고 살려했지만 아직은 같이 있던 시절이 길어서인지 너무나도 반갑게 들렸다. 그리고 이거 저거 하나하나 묻다보니 어느덧 이사쿠가 아는 모든 정보를 캐물었더라. 하지만 이사쿠는 오히려 지쳤다기보다 눈이 빛났다. 역시 서로에겐 관심이 있다며 몬지로는 항상 네 안부를 묻는데 너도 똑같은 걸 보니 동실은 동실이랬다. 그 놈의 동실 타령이 짜증났지만 이렇게나마 거리를 두고서라도 몬지로가 살아있다는 걸 알게 돼 묘하게 안심됐다. 이사쿠는 더 나아가 연락하라며 애써 성을 알려주려 하는 것이다. 난 더 이상 깊게 관여하고 싶지 않다고 내 신변에 위협이 갈지도 모른다며 거절했지만 이사쿠는 되려 나에게 지나친 걱정 핑계대면서 이럴 거면 올 때마다 몬지로 얘기만 하기 전에 얌전히 받으라며 부대까지 알려주곤 갔다. 그리고 주소 알려줘도 되냐는 질문에 어차피 제대로 약점이 잡힌 나였기에 포기하고 허락해버렸다. 하지만 그렇게 내쳤는데 그 자존심 쎈 놈이 다시 나한테 연락하거나 답장할 일은 없다는 걸 나도 안다. 하지만 띨박해서 자기를 욕하거나 싸운 녀석도 내치지 못한 놈이기 때문에 혹은 애써 날 잊어 결국 정보를 팔지도 못할 놈일 것이다. 나에게 이롭진 않지만 그렇다고 정보를 포기할 만큼 그리 큰 독이 될 일이 아닌 건 아니다. ‘언젠가 이사쿠가 잊을 쯤 바로 이사를 가야지.‘

“이사쿠 네가 기대하는 그런 거 우리한테 기대해봤자 없어.”

그래서 애써 선을 긋고 이사쿠를 돌려보냈다.

 

 

이 계기로 연락을 하게 된 게 기쁨과 동시에 부질없다고 느껴진다. 분명 내가 매정해보일 수도 있으나 연락이 닿더라도 종이가 비싸 자주 연락하지 못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혹은 내가 바쁘게 이사를 다니느라 결국 이도저도 아니게 대화가 끝날지도 모른다. 그냥 어찌되든 지금보다도 끝이 좋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낙천적인 생각으로 얼버무리기엔 이젠 짊어진 것들이 너무나 많아졌다. 애초에 성에 취직해 발묶인 몬지로를 찾아가거나 찾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였다. 하지만 나의 신변보다도 내 현 상태나 기분 등을 편지를 통해 지속적으로 누군가에게 노출되는 것은 내 당장의 일상뿐만 아니라 목숨을 부지하는 것에도 큰 영향을 준다. 물론 몬지로를 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도 몬지로를 믿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데 편지는 오죽하겠는가. 나는 최대한 신변에 위협을 줄만한 것들을 위해 날 걸고 도박을 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난 졸업이 다가오던 그 겨울밤 성에 취직했다며 성 이름을 말해주려던 몬지로에게 어차피 졸업 후면 보지도 않을 거 알 필요 없다며 말을 잘랐다. 솔직히 내 스스로 졸업 후 홀연히 사라져 생긴 빈 옆자리를 나도 느꼈다. 후회는 했지만 후회할 때마다 내가 무슨 분수에 넘치는 생각을 하냐는 생각이 따라 나올 뿐이었다. 내가 해한 사람들처럼은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치고 들어와서일까. 아니면 몬지로가 나와 6년을 함께 산 건 외엔 그 어떤 것도 없다 할지라도 이렇게 일방적으로 연을 끊어낸 내가 이러면 안된다는 생각이 든 걸까. 그게 무엇이든 내가 이렇게 사는 건 내 마지막 양심이다. 이게 내가 몬지로와 그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베풀 수 있는 미덕이다. 내가 다른 놈들처럼 희희낙락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적어도 난 그 아이들 전부 보다 더 많은 사람을 해했다. 최소한 내 업보만큼 편안하겐 살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몬지로가 왔다니?

그래서 널 잊고 살았더니 대체 왜 지금에서야 나타난 걸까. 차라리 귀신이면 좋겠다.

하지만 질퍽대며 걸어오느라 조금은 진흙에 묻힌 발소리가 1년전까지도 매일 기다리던 그 소리와 너무 같았다. 그리고 혹시 임무때문에 이 지역에 왔을지도 모르고 바보답게 날 찾아온 걸지도 모른다. 물론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변성해 나를 숨겼어야 할 터이다. 하지만 나

는 그런 생각을 하기엔 이 순간을 기다려왔나보다. 혹시 몰라 들고 있던 작은 독 묻은 검을 놓진 못했지만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열었다. 1년 새에 많이 변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왠지 수척해보이는 몬지로에게선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냄새가 났다. 널 잊을 수록 생각난 냄새, 정확히는 내가 죽인 사람들과 같은 피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이 상태로 계속 서서 대화하다 말이 새는 것도 좋지 않겠지. 난 애써 담담하게 말했다.

“여기서 이러는 것도 민폐인데 들어와.”

 

-

 

닌자는 사람을 소 잡는 백정처럼 해하면 안된다. 애초에 그것만을 위한 직업이었으면 난 닌자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도쿠타케 닌자 대장인 괴팍하고 아이들을 괴롭히는 그 머리랑 턱골만 큼직한 핫포사이마저 아이들을 가르치며 키우지 않는가. 나또한 아이들을 지킬 만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기에 어린 아이 여럿을 안고도 거뜬히 뛰도록 후배들을 데리고서 이젠 아마 뾰족했던 모서리가 다 닳았을 그 철주판을 안고 운동장을 돌았다. 물론 문젠 무언가를 안고 달리기 때문에 오랫동안 보통 닌자들을 따돌리긴 커녕 금방 따라잡힐 정도였다. 홀몸이면 확실히 더 빠를 수 있었겠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마침내 아이 몇을 들고 뛸 수 있을 정도가 될 때가 될 때까지.

물론 닌자가 사람을 지킬 때보다 해할 때가 필요한 직업임을 안다. 6년간 배운 것 중에 그런 기술이 없었다고 호언장담치도 못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닌자가 된 것은 내가 선생님처럼 누군가를 지켜주기 위해서이다. 물론 누군가에겐 그게 센조처럼 강한, 오히려 내가 지켜지고 보호받는 존재가 될 지도 모르지만 난 아니다. 오히려 꼬물거리는 1학년보다 더 작고 여린 아이들을 키우는 사람이 될 것이다. 센조같은 냉혈한들은 누군가를 챙기는 것보단 혼자 살 테지만 난 다르다. 애초에 센조같은 경우가 닌자에게 맞는 일이다만 사람답지는 못하다.

그 녀석은 냉혈한 뜻 그대로 어린 아이들이 오히려 곁에 있으면 꺼림칙하다거나 짐이 된다며 버릴 녀석이다. 가끔 그런 녀석이 내 곁에 머무르는 것이 그 녀석이 나를 인정하는 것 같아 뿌듯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졸업하면 센조는 곁에 내가 있었다는 것을 쉬이 잊는 다거나 아니면 오히려 혼자가 된 이 차가운 상황을 즐길까봐 두려웠다. 이 예상은 슬프게도 맞아떨어졌다. 내 곁에 머문 게 아니라 그저 내 곁이 비어있었기 때문이었나보다. 졸업 전의 난 센조와 지금처럼 지낼 줄 알고 내가 취직한 성에 대해 얘기해주려 했으나 센조는 달랐다. 내 말을 오히려 끊으며 졸업을 하면 원래대로 몰랐던 사이가 되자며 졸업 후 홀연히 사라졌다. 전장의인 이사쿠만이 프리로 일하던 센조를 간간히 만날 뿐이었다.

 

이후 이사쿠를 만난 날 센조에 대해 전해들었다. 나를 완전히 잊은 듯 산댄다. 이것도 내가 살짝 추궁하듯 물어 얻은 결과다. 우리 사이에 낀 이사쿠에게 조금은 미안해질 정도로... 내가 너무나 티를 낸 것인지 이사쿠는 내게 물었다.

“너 혹시 센조랑 연락도 안돼..? 혹시 여건이 안되면 편지라도 보내줄까?”

이사쿠는 아직도 토메사부로와 잦게 교류한다. 비록 쵸지와 코헤이타는 학원과 먼 곳에 취직해 산지도 죽은지도 모르지만 이사쿠로부터 전해들은 걸 들으면 둘은 아직도 편지를 주고 받는다고 한다. 만일 종이가 부족하다면 사람을 보내서라도. 자주는 아니더라도 연락을 한다고.

결국 센조와 나만이 연락 두절인 것이다. 니네가 그러니까 물러터진 거라며 툴툴댔지만 이사쿠는 그걸 질투로 생각한 건지 날 애써 위로했다. 센조도 네가 보고 싶을 것이라고. 내가 그런 놈이 왜 보고 싶겠냐고 쏘아붙여봤자 이사쿠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이상한 동정으로 가득찬 채로 계속 날 설득하려는 그 강한 의지에 지쳐 결국 편지를 적기로 했다. 이사쿠는 굳이 나에게 그가 어디 사는 지까지 알려줬다.

“이거 범죄 아니야? 너 지금 애 위험하게..”

“이거봐. 바로 걱정하잖아. 이러니까 내가 믿고 전해주는 거지! 잘해봐!”

그러면서 가버리는 그 순진한 애한테 무슨 말을 하랴.

 

그 날 밤 나는 종이를 힘들게 몇 구해 편지를 적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다. 애초에 무슨 말은 해야 맞지? 내가 그렇게 좋은 동실이지도 못했고 센조도 그랬다. 이사쿠가 기대하는 그런 애틋함보단 애증? 형용할 수 없는 사이다. 정확한 건 내가 없어도 잘 살 센조라 답장을 해주지도 않을 거고 그것에 난 분명 동요한다는 것 정도. 그리고 이 작은 땅에서 언젠간 적으로라도 마주하지 않을까. 그런 태평한 생각이 멤돌았다. 그 때 마주쳐봤자 아는 척도 안하고 날 죽이려고 달려들 놈인데 내가 무슨 애틋한 편지를 적을 맘이 생기겠냐. 마주하지 않는 것이 센조한텐 더 행복한 일일지도.. 어차피 답장도 못받고 시간낭비일텐데. 그런 생각만 나서 결국 난 인삿말도 다 못적은 채 여러 종이를 낭비한 뒤에야 다 때려치우고 잠에 들었다.

바보토메같이 너 혼자 행복하지 말라고 구질구질하게 구는 것은 내 체질이 아니다. 하지만 생각할 수록 괘씸한 것은 맞다. 현실적으로 내가 6년동안 살 부비고 산 놈이 나를 그 정도로 밖에 취급을 안한다? 그러면 토메사부로같다고 생각한 그쪽도 살 떨릴 것이다. 비록 그쪽이 그런 생각을 했을 지조차 나는 이해할 수 없어 추측일 뿐이지만. 물론 우리가 애틋한 동지애?

그런 건 없었다. 적어도 타치바나 센조에겐. 고민해 볼 것도 없이 없었다. 실망스럽다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우린 우연찮게 같은 반에 같은 방을 쓰게 되어버려 같이 있었을 뿐인 그런 사이였다. 게다가 둘 다 우정 노름에 관심이 없었으니 더더욱 파트너로서 대하게 되었다. 죽이 잘맞았다고 하면 잘맞았다? 우린 충분히 서로의 역할을 다 했다. 센조에겐 없을 정이 내겐 생겼지만 그럼에도 변한 것은 없었고 지금도 없다. 애초에 내가 지금 애틋하게 회상하는 그는 5학년 때 선배 따라간 실습에서 손을 더럽히고도 웃던 냉혈한이었다. 그는 내가 적이라면 내가 그로 인해 싸늘히 식을 때 날 보며 웃을 것이다. 내가 잠들기 전에 내린 결론은 이랬다. 그렇게 찬 이불 속에서 편지도 이사쿠의 설득도 잊었다.

 

-

 

하지만 나는 지금에야 깨달았다. 난 지금 센조를 만나야 한다. 지금이 아니고서야 안된다.

 

 

솔직히 아무리 에둘러 말한다 하더라도 이 일을 입에 담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조금은 아니 정말로 피하고 싶던 일이 벌어졌다. 체온이 따뜻하다 못해 뜨거울 지경이던 그 몸이 나로 인해 차갑게 식었다. 아니 이젠 썩었으려나. 정말 우습다 못해 뻔해 보이는 거짓말 같지만 실수였다. 습격도 아니고 실수로 그를 찔렀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는 민간인도 아니고 적군이었다. 하지만 불행한 건 적군은 이미 항복을 했다는 것이고 그는 살려달라고 빌면서 비틀대던 중 이 일이 터진 것이다.

 

당시 난 당시 총애받고 있던 덕인지 전쟁 중에도 개인 임무를 받은 상태였다. 그걸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그와 마주쳤다. 이런 일은 처음이라 멈칫한 사이 그는 날 빠르게 쫓아왔다. 긴장이 살짝 누그러진 채 서두르던 내가 누군가의 눈에 발각된 것이다. 갑자기 다시 긴장이 되어서 그런지 손이 덜덜 떨렸다. 게다가 숨에 차 있고 마지막 기력까지 내서 쫓아온 듯 떨리는 몸을 한 그의 모습이 광기에 사로 잡혀 있는 것과 같았다. 그 위협에 나는 최대한 그가 상처입지 않도록 똑같이 위협했다. 애초에 창 끝부분으로 휘두르면 상대는 피하느라 거리만 멀어지지 다치더라도 조금의 상처만 입는다. 적어도 내가 봐온 모든 책들에 적힌 내용들은 그랬다. 우연찮게 창끝이 그의 복부를 찌른 것은 책 탓도 그의 탓도 아닌 내 잘못이었다. 정확히는 너무 긴장을 한터인지 비틀대다 찔린 배를 눈치채지 못해 창을 휘젓는 것을 멈춘 건 조금 많이 늦었고 그것은 확실한 내 잘못이다.

무사들이나 하는 할복이 이렇게나 고통스럽단 말인가. 난 아직도 그의 얼굴 정확히는 그 복부 속까지 생생히 기억해버리고 있다.

마지막에 피를 토하며 움찔 대던 것을 멈춘 그를 보고 나는 내가 사람을 죽였다는 막연한 그 공포가 밀려와 도망쳤다. 뭔가 위협하려 중얼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다시 곱씹어보니 ‘동료들이 굶어 죽고 있어요. 부디 물자를 주세요.’같은 말들이었다.

 

적군이 물자에 쫓기다 그만 항복했다는 것까지 못들은 나의 잘못이었다. 뒤늦게 겁에 질린 채 이 일에 대해 선배들에게 이야기를 꺼냈을 때가 되서야 그 얘기를 들었다. 이 후 선배들께선 정신없이 돌아온 내 말을 듣고 그를 찾아가 묻어주었다고 한다. 다만 그걸로는 용서 되지 못하는 행동임이 분명했다. 실수라고 회피하려 해도, 운이 없었다고 넘어가기에도 난 나를 용서할 수 없다. 난 겨우 긴장을 했다는 이유로 악의 없는 사람을 죽였다.

 

이후 며칠이 흘러도 난 진정이 되지 않았다. 물론 겉으로 보기엔 괜찮아보이지만 손이 떨리고 정신이 멍한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위험한 전장에 나가기엔 충격이 커보이다보니 단순한 조사정도만 맡고 있다. 원래 처음엔 다 그런거라고 다 이해해주셨다. 이게 바로 어른의 여유인걸까. 어째선지 살갑게 두드려주신 두령님의 손이 날 더 죄스럽게 만들었다. 그렇게 조사를 하던 중 나는 새삼스레 확실한 사실 하나를 느꼈다. 난 지금 심각하게 죄악감에 사로잡혀있다. 사람의 눈을 잘 못보게 되어 선배들에게 조금 꾸중을 들을 땐 몰랐다. 하지만 마을 조사 중에 뛰어다니다가 넘어져 다리를 다친 아이를 도와주기 위해 그 아이를 안아올렸을 때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리고 팔로부터 전해져오는 체온과 심장박동이 너무나 징그럽게 느껴졌다.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리곤 재빠르게 아이에게 급한 일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그대로 도망갔다.

왜 두령님 손길이 선배들의 위로를 듣는 것도 괴롭지만 나를 위로하며 등을 토닥여주실 때 몸이 떨렸는지 알 것 같다. 스스로 이러면 안되는 걸 제일 잘 알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체온을 느낄 때마다 내 얼굴에 튄 그 따뜻한 피가 점차 차갑게 식어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의 마지막에 나한테까지 느껴진 그 몸의 박동인 것처럼 죄스럽게 느껴진다. 난 사람을 죽였다. 과연 온전히 자기 잘못으로 사람을 죽인 사람이 이런 일상을 살아도 되는 것일까. 그걸 떨쳐내지 못한 것이다. 적어도 피를 보는 게 무서울 줄 알았지만 오히려 난 이제 사람을 안는 것이 무섭다. 잘못한 사람은 그 이유가 무엇이든 벌을 받는 것을 마땅히 여겨왔다. 용서를 받는다고 해도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뤄야 한다. 만일 전투에서 만일 살생을 하더라도 절에 평생 안녕을 빌고 그만큼 공헌하면 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제 아무리 부처님께 죄를 빈다고 해서 사라질 것이 아니였나보다. 한심하게도 내가 누군가를 죽일 거라는 건 완전히 막연하게 생각하고 살아온 것이다. 닌자가 사람을 죽이는 것쯤은 알고 있었는데. 내가 천벌 받을 줄은 몰랐다.

 

난 센조처럼 웃진 않아도 죄책감이 이정도로 클 줄 몰랐다.

 

그 녀석처럼 웃으려면 애초에 몸에서 체온보다 차가운 피라도 흘러야 되나.

나도 모르는 새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센조를 놓아주기로 해놓고선 또 떠올리고 있던 것이다. 그것도 사람을 무서워하는 지금. 네가 날 버린 시점에서.

그러면서 동시에 절대 하면 안될 생각이 났다.

센조가 보고 싶다.

너라면 내게 화를 낼까. 그러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걸 받아들일까? 되려 그 차가운 몸으로 날 안아줄까. 차가운 체온이면 그 날의 감각이 조금은 잊혀질까. 아니면 정말로 현실을 수긍하게 할까. 그렇게 난 정말 즉흥적으로 병가를 내곤 센조가 있는 곳으로 갔다. 의외로 멀지 않은 곳. 하지만 절대 가깝지도 않은 곳이다. 며칠 걷는다면 분명 다다를 곳이다. 거기서 해답을 찾아오는 것이다. 나의 6년을 봐온 동실이자 날 그리 내친 냉혈안에게 다시 한 번 차가운 그 체온을 느끼기 위해서.

-

“비에 젖은 상태라 네게 피해끼치는 것 같다. 빨리 대화나 끝내고...”

“아서라. 니 꼬라지나 보고 말해.”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이라도 할 생각인지 아니면 애써 정다운 척이라도 하려했던 건지 나는 몬지로의 땀과 나뭇잎, 별 이상한 것들이 다 묻어있는 손목을 잡아 끌었다. 밤이 깊었으니 자고 가라며 애써 건네준 여벌의 옷조차 -변장용 옷인데 솔직히 첫눈에 몬지로의 체격에 맞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손의 떨림탓에 부들댔으니 몬지로도 충분히 알았을지도 모른다. 난 널 만나 정말 아무렇지 않지 못하단 말하듯이 떨려온 건 전부 사실이니까. 하지만 난 안다 지금 내 이기적이고 일방적인 생각으로 채우기엔 몬지로가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몬지로는 온몸이 척추부터 떨려 왔으니 몬지로도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거겠지. 포복을 할 지언정 옷을 다 헤지도록 마구잡이로 지나오는 사람이 아니였던 건 내가 제일 잘아니까. 차라리 네가 죽이려 달려들더라도 그렇게 간신히 바라보는 시선으론 내 급소를 찌를 수 없다는 걸 난 알기에 문을 열어준 것이었지만. 적어도 내가 6년간 만난 넌 그런 사람이니까. 넌 적어도 6년동안 사람을 속이긴 커녕 6분만에 속내를 다 들켜버릴 닌자답게 살지만 가장 닌자답지 않은 놈인 걸 널 이렇게 떨게 만든 사람조차 알 것이다.

-

몬지로는 담담한 척 해보려 애써 곧게 앉았다. 편히 앉으래도 최대한 작게 다리까지 꿇고 앉아 있다. 목욕할 때도 추운 빗물에 젖어 추울까 따뜻한 물을 끓여 가져다 주려니 흙먼지를 대충 닦아내고 나오는 참지 않은가. 애써 따뜻한 물을 쓰지 않겠다는 몬지로에게 예의타령을 해대며 겨우 설득해 다시 씻게 했다. 게다가 지금은 저가 추울까 피운 불씨 하나라도 피하려는 듯 기어코 문쪽에 앉았다. 그리고 한동안 빗소리와 불씨가 맴도는 따스한 집안과는 다르게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갈 수록 몬지로의 손이 꼼질대거나 내가 언찮아 자세를 약간 바꾼 것 외엔 아무 움직임이나 언동도 없었다. 졸업식 전 처음 보는 사람처럼 다시 돌아가자 했던 그 날 밤처럼 처음 만난 사람보다 나를 경계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하긴 나 스스로도 그렇게 내치고도 돌아온 그가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니 아직 분이 덜 풀린 걸까.

하지만 말은 예상 밖이었다.

-

“센조 5학년 때 기억나?”

그 때 네가 선배들을 따라 갔던 실습에서 소리 없이 웃던 그 날

“물론이지. 그 때 처음으로 숨통트인 기분이었어.”

그런 일을 어떻게 쉽게 말할 수 있지. 나로썬 상상치 못할 일이다.

그 날은 정말 차갑던 봄날이었다. 분명 새학기지만 눈이 내려 어린 후배들은 좋다고 눈놀이를 하고 실습을 나가는 선배들과 우리에겐 아주 사양이었던 그런 날씨였다.

“이상하다. 오늘 실습 이사쿠는 안가는데 말이지.”

어쭈. 넌 그게 사람한테 할 소리냐.

5학년이 된지도 얼마 안됐고 둘 다 늘상과 같이 실습을 굳이 따라가는 날이다. 그래서 평소처럼 선배들의 실습준비 중이실 때 공부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센조는 헤이하게 창 밖을 보고 말했다. 정말 새하얗게 덮진 못했지만 난로 옆에서 책을 보면 구경하는 우리에게는 따뜻해 보일 그런 날씨였다. 낮에 살짝 녹았다가 실습 나가는 밤에 얼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보고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당장 곧 시험인데 태평하게 거의 한시진간 창밖을 보는 건 또 말이 안된다. 심지어 실습도 센조가 같이 가자며 데리고 가서 가는 것이지, 속으론 위원회 활동을 하는 옆에 닌타마의 친구를 펴두고 공부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나마 선배들이나 센조의 보고 배울 점 정도 보러 가는 것이었지. 다녀오면 한동안 센조가 닌자로써 한 걸음 성장했다며 약간 들떠하는 모습을 보는 것 정도가 내 유일한 소득이었다. 그러면서 홀로 서기를 벌써 꿈꾸는 모습은 정말로 어린 아이같은 센조의 거의 유일무이하다시피하는 인간미 있는 모습이었다.

그 날 밤 선배님들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허락된 평소와 같은 실습견학을 나갔다. 얼마나 심각한 곳이었는지. 그 주변에 우리 또래는 커녕 그 누구도 성인식도 못 치룬 꼬맹이들이 올 곳이 아니란 걸 알만한 곳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선배들도 우수하다고 해주셨을 정도이고 누락되거나 해가 되는 일을 오히려 다른 선배 몇보다도 덜했을 정도였다. 그러니 안심하고 선생님들이 허락해주셨겠지. 하지만 난 어렴풋이 알고 있다. 이건 단순한 센조의 노름판에 어울려 주는 것이라는 걸. 센조가 나보다 뛰어난 것도 사실이고 거침없으면서도 신중한 건 사실이었다. 그러면서 어찌나 실수는 없는지. 비교적 실수한 횟수가 제법 더 많은 편인 나는 왠지 반쯤 부하취급을 받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던 중 선배들은 특별히 우리에게 임무를 주셨다. 단순히 가짜 문서들을 진짜인양 전달하러 가라는 것이었다. 센조면 몰라도 내게는 어찌보면 처음 받아보는 제대로 된 임무였다. 센조에게는 처음으로 선배들의 호위가 붙지 않는 임무이기도 했다. 이제 일손이 필요해 도울 정도라니 새삼스럽게 우리의 성장을 느꼈다. 특히 나의 경우는 첫 임무다보니 더 떨렸더랜다. 그렇기에 제대로 정석대로 나무를 타며 갔다. 하지만 그게 더 눈에 띄였던 탓일까. 의외로 나는 자만했던 걸까. 실수로 헛딛어 발이 미끄러지며 나무가 제법 크게 흔들렸다. 그 탓에 몇몇 새는 울며 날아갔고 그에 맞게 잠복 중이던 적군 닌자 한 명에게 바로 들켰다. 다행히 우수한 편이었기도 하고 위험천만한 실습을 잘 따라 다닌 덕일까. 물론 바로 붙잡히진 않았다. 하지만 프로는 프로였다. 정확히 내 발 부분 나뭇가지를 맞추어 나는 그대로 굴러 떨어졌다. 지금 보면 왜 저럴까 싶었지만 내게 거의 제대로 된 첫 임무였으니 방심할 만도 하다.

그래서인지 내가 나무에서 떨어지고 다리를 끌며 도망쳤듯 센조도 실수를 했다. 확실히 그 때는 몇년전이지만 어리고 더더욱 세상물정도 모르던 때였다. 그리고 그 때는 세상물정을 몰라도 용서가 되던 때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동실과의 첫 임무였던 그런 설렘 가득한 날이었으니까.

(쓰고 있는 사람이 컨디션 조절 실패 및 분량 조절 실패로 인해 상태가 많이 안좋은 관계로 다음화는 나중에..)

bottom of page